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원자력의학원 (문단 편집) === 역사 요약 === '''원자력원 방사선의학연구소부터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설 원자력병원까지(1963~2001)''' 한국원자력의학원의 역사는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와 궤를 같이 하며 동시에 근대 과학기술 발전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의 뿌리가 되는 방사선의학연구소의 시작은 원자력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력 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계획’ 발표 이후 미국은 UN 산하 기구인 IAEA 설치를 주도했고, 우리나라는1957년 6월 17일 IAEA 협약에 관한 국회 비준을 거쳐 같은 해 8월 8일 IAEA 정식 회원국 지위를 획득했다. IAEA는 후진국의 원자력 연구를 지원했으며 우리나라에 해마다 1만 5천~3만 달러 규모의 연구비를 지급했다. 정부는 원자력 연구 개발 및 이용을 위한 첫 원자력 행정기구로서 원자력과를 신설했고 1958년 10월 대통령령 제1394호에 의해 원자력원 직제가 공포됐다. 이후 원자력원은 관련 산하 기구를 신설하며 본격적인 원자력 시대를 열어나갔다. 1959년 2월에 설립한 원자력연구소는 ‘원자력 연구·개발을 통한 학술의 진보와 에너지 확보 및 원자력 이용의 촉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원자력 연구기관이었다. 1963년 12월 17일 개소한 ‘원자력원 산하 방사선의학연구소’는 방사선의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내 유일기관으로서 대한민국 최초의 암 전문병원이다. 1967년에 과학기술처가 신설되면서 원자력원은 폐지되고 과학기술처 산하 원자력청으로 개청되었고 1968년 2월에 원자력청 산하 방사선의학연구소 부속 암병원을 개원했다. 전국의 암 환자들은 다소 이름이 긴 ‘방사선의학연구소 부속 암병원’을 단박에 떠올리지 못하고 그 대신 “서울 광화문에 가면 암을 원자력으로 고치는 병원이 있다”라는 입소문이 널리 퍼졌다. 1973년 2월 ‘한국원자력연구소 법안’이 의결되어 원자력청은 사라지고,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재단법인 형태로 새롭게 태어났다. 방사선의학연구소는 ‘재단법인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속 원자력병원’으로 민영화됐다. 1980년 5·17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군사정권은 ‘연구효율 극대화’라는 명분 아래 각 연구기관 통폐합을 추진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에 한국핵연료개발공단을 흡수 통합시킨 후 1980년 12월, 한국원자력연구소를 ‘한국에너지연구소’로 변경하여 한국에너지연구소 부속 원자력병원이 됐다. 원자력병원은 1982년 10월 종합병원 인가를 획득하고, 수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1984년 공릉동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병원을 신축 이전했다. 원자력병원은 병원신축자금과 최첨단 의료기기 구입 자금 약 700만 달러를 미국, 스웨덴과의 차관계약을 통해 조달했는데, 신축병원에는 국내 최초 원형입자가속기인 ‘사이클로트론(Cyclotron)’과 입자가속기의 일종인 ‘마이크로트론(Microtron)’ 등 국내 최초의 특수 장비가 설치됐다. 1986년 11월 국내 최초로 원자력병원이 사이클로트론 및 중성자선 암 치료기와 마이크로트론 방사선 치료기를 정식으로 가동하여 당시 말기 암환자의 암을 치료율을 끌어올렸다. 암에 걸리면 사망선고와 다름없던 시절 암 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1988년 1월 제6공화국 출범을 앞두고 ‘한국에너지연구소 원자력병원’은 ‘한국에너지연구소 부설 원자력병원’으로 승격 조정됐다가 1990년에 다시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설 원자력병원’으로 환원됐다. 1989년 7월 원자력병원 보건사회부로부터 ‘500병상 이상 대형 종합병원’의 기준에 부합하는 ‘3차 의료기관’ 지정을 받았지만 환자 수 급감과 함께 재정악화를 심하게 겪었다. 재정악화는 공릉동병원 신축으로 차입한 부채 금액과 전 국민 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탓도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의료시장은 의료시장 개방화와 대기업의 병원사업 진출로 요약할 수 있다. 원자력병원은 급변하는 대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명실상부한 ‘종합학술병원’이 되기 위한 장기 비전을 재정립하고 중점 전략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연구의 활성화, 진료의 특성화, 기관경영의 효율화라는 3대 중점 추진과제를 설정했다. 그러나 1997년 12월 3일 IMF 외환위기로 환자 수가 급감하자 병상 일부를 폐쇄하고 인력 구조조정 및 직원 연봉 감축 등 일련의 경영혁신을 단행했다. 원자력병원은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위기가 환자의 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이어갔다. 1997년에 최첨단 장비인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장치를 도입 가동하였다. PET 가동으로 각종 암 진료와 핵의학 연구에 더욱 매진할 수 있게 되었고, 갑상선암 검사에 필수적인 장비로 자리 잡았다. 2001년 3월 PET용 방사성의약품과 생산 장비를 국산화한 데 이어 ‘13 MeV급 가속기’를 개발하여, PET 인체 영상촬영에 반드시 필요한 방사성동위원소를 자체생산하게 됐다. 이로써 외국산 장비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입자가속기를 설치·운영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PET를 이용한 암 진단 비용을 훨씬 저렴하게 하는 길을 열었다. 2002년 7월에는 국내 최초 최첨단 방사선수술 장비인 사이버나이프(CyberKnife)를 도입하고 사이버나이프 센터를 개소하여 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됐다. '''부설 원자력의학원에서 독립법인 한국원자력의학원의 시대(2002~)''' 2001년에 정부의 제2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2002~2006)이 확정됐다. 여기에는 “의료 분야에서 원자력 이용을 확대하여 국민보건에 기여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원자력병원은 과학기술부 장관으로부터 정관 변경을 승인받아 2002년 9월 4일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설 ‘원자력의학원(原子力醫學院, Institute of Radiological & Medical Sciences)’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2년 9월에는 국가적 방사선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콘트롤타워,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를 개소하고, 2002년 11월 29일에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설 원자력의학원’이 공식 출범했다. 2006년 12월 26일 정부는 ‘첨단 방사선의학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흥한다’는 내용이 담긴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 이용진흥법’ 중 일부 개정 법률을 공포한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2000년대에 들어와 과학기술·경제 발전에 따른 삶의 질 향상과 복지증진, 인구의 고령화 추세 등 국내 환경변화에 따라 방사선의학 관련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었고 무엇보다 방사능 재난을 대비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국가적 역할이 확대되는 등 원자력의학원의 역할과 기능이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원자력의학원을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설기관으로 운영하기에는 고유의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에 어려운 점들이 많았기 때문에, 국회에 상정된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 이용 진흥법’중 일부 법률 개정안에는 원자력의학원을 ‘법적으로 독립된 위상을 갖는 방사선의학 진흥 전문기관’으로 확대 및 개편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이에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설 원자력의학원은 44년이 넘은 오랜 ‘부설’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과학기술부 직속의 독립기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원자력의학원은 2007년 3월 27일 독립법인 한국원자력의학원(韓國原子力醫學院, Korea Institute of Radiological & Medical Sciences)으로 새롭게 출발한 후, ‘방사선의 의학적 이용 및 연구개발 업무와 암 진료, 국가적인 방사선 비상진료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되어 국가 과학기술 발전과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한국원자력의학원 출범과 함께 방사선의학연구소와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를 사업단으로 격상하여 원자력병원·방사선의학연구소·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3개 사업단으로 변경했다. 2010년 7월 19일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집중되어 있는 동남권역에 한국원자력의학원의 분원인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정식 개원했다. 정부 및 지자체, 의학원이 공동으로 설립한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방사선의학 융합기술을 개발해 암 등의 난치성 질환 의료산업 기술화를 달성하는 연구병원 모델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임상연구와 진료·치료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했으며, 이에 따라 ‘국내 최초 방사선의학연구병원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2019년 8월 8일 국내 최초로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신개념 치료기술 개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국가RI신약센터(KRICP, Korea Radio Isotope Center for Pharmaceuticals)를 개소했다. 국내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과 새로운 치료용 방사성의약품 연구 개발 및 제품화를 촉진할 플랫폼을 구축해 현재의 한국원자력의학원의 모습을 갖췄다. 한편 한국원자력의학원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방사선의학을 선도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2016년 9월에는 IAEA 역량개발센터(Capacity Building Center)에 지정됐다. 2016년 5월 IAEA와 공동으로 아시아·중동 지역 전문가 대상 ‘방사선 선량평가 교육 과정’을 개최하고 역시 IAEA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같은 해 8월 29일부터 2주간 중동국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CBC(Capacity Building Center, 역량개발센터) 국제교육과정’을 개최했다. 이 국제교육과정에서는 아랍에미리트·카타르 등 총 7개국 10명의 의료 인력을 대상으로 내·외부 피폭선량평가 및 현장의료대응 등 방사선 비상진료에 관한 경험 및 기술을 전수했으며, 개인 방사능 방호조치 및 각종 장비활용 실습도 진행했다. 또 한국원자력의학원은 2017년 아시아 최초이자 국내 최초로 방사선 비상대비 및 대응분야 ‘WHO 협력센터(Collaborating Centre)’로 지정됐다. 이후 한국원자력의학원은 WHO의 국제적인 방사선 비상진료 관련 가이드라인을 번역하여 전파하고, 국제 워크숍 개최를 통해 새로운 지식 공유 및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등 WHO와 지속적인 협력 활동을 이어갔다.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원자력의학은 다변하는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며 ‘진료 중심의 의료기관’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사회문제와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면서 ‘융합형 의료기관’으로의 혁신을 지속해 왔다. 그리고 2023년에는 「공공의료 기반 특성화 의료사업 강화」, 「첨단 의료기술 실용화 플랫폼 고도화」, 「방사능 재난 의료 연구·진단기능 강화 및 생활방사선 의료대응 확대」, 「아시아태평양지역 방사선의학 연구거점 도약」이라는 미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