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증권거래소 (문단 편집) === 명동 시대 (1956~1979) === 1945년 8.15 해방 후 한국 증권계는 증권구락부를 중심으로 증권거래소 설립을 꿈꿨으나, 당시 사회/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아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1954년 정부와 대한증권업협회를 중심으로 '증권거래소 설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고, 1955년 '대한증권거래소 설립위원회' 조직 후 준비과정을 거쳐 1956년 2월 11일, 일제 때 만들어진 '조선증권취인소령'에 따라 금융/보험/증권단이 출자한 [[영단]]제 조직 '대한증권거래소'가 정식 설립되었고, 본사는 1922년 준공된 3층건물인 명동 구 조선증권취인소(取引所) 건물로 했다. 그해 3월 3일 개장 이래 주식 16개 종목 및 국채 3종목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상장회사 주식이 분산 안 돼 건국공채 매매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출범 원년 상장기업은 본사를 비롯해 [[한국전력공사|경성전기, 남선전기]], [[HJ중공업|대한조선공사]], [[한진해운|대한해운공사]], [[조흥은행]], [[동화약품]], [[한국상업은행]], [[경성방직]], [[SC제일은행|한국저축은행]], [[CJ대한통운|조선운수]] 등 12개사였다. 1962년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따라 개발자금 마련을 위해 '증권거래법'이 제정되어 4월 주식회사제로 개편됐으나, 투자자 보호보다 영리가 우선되어 거래량 증가에만 혈안이 되었고, 이에 따라 과열 투기가 유발되어 동년 5월 '[[증권파동]]'으로 증권시장에 대한 불신이 늘자 1965년 5월 정부 출자를 받아들여 공영제 개편 후 '한국증권거래소'로 개칭한 뒤 증권시장 공신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1971년 청산거래제 대신 보통거래제를 도입하였으며 1975년 격탁(딱딱이) 및 손짓을 대신해 포스트매매제로 바꿨다. 1974년 자회사 [[한국예탁결제원|한국증권대체결제]], 1977년 [[코스콤|한국증권전산]]을 각각 세웠다. 1979년 9월 여의도 신관으로 이전하였으며, 이후 명동 구관은 1980년부터 제일종합금융(당시 제일투자금융) 본사로 썼으나, 1998년 제일종금 퇴출 후 상가로 사용되다 2005년 근대문화재 예고 와중에 철거되었으며 이듬해 명동 아르누보센텀이 들어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