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프로야구/1989년/신인드래프트 (문단 편집) === 팀별 총평 === * 태평양 돌핀스 : '''최악의 1차 지명, 인천소방서장을 뽑은 2차 지명'''. 인천야구 역사상 최약체 시기답게 뽑힌 1차 지명자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제물포고]] 출신 1호 프로 선수인 허정욱을 제외한 1차 지명자는 모두 지명 포기 당했다. 허정욱은 그나마 한 두 해 태평양에서 잘 써먹었다가 은퇴해서 훗날 [[SK 와이번스]]에서 스카우터가 됐다. 정작 이 해의 가장 중요한 드래프트는 2차 1라운드 우선 지명자들이 아닌, 2라운드에서야 뽑힌 [[정명원]]이었다. 정명원의 활약이야 인천 야구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인천의 수호신급이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박준태는 태평양에서는 야구 천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며, LG로 트레이드된 이후에야 만개하게 되는데, 그나마도 체력문제로 봄에만 반짝하는 유형의 선수가 된다. * MBC 청룡 : '''다이스가 안 따라줘도 상대가 던지면 이긴다'''. 동전 던지기에서 패배한 몇 안 되는 해. 그러나 OB가 말도 안 되는 드래프트 전략으로 김기범을 버리고 이진을 선택하자 바로 김기범을 선택한다. 뭐 OB의 예상대로 리그 최고의 에이스는 되지 못 했지만, 아무래도 이진보다야... 게다가 최고의 백업, 대타였던 최훈재까지 픽하면서 MBC 청룡-LG 트윈스의 전성기를 이끈 드래프트로 평가받는다. 다만 2차 지명 선수들이 아무도 큰 활약을 보이지 못 한 것이 아쉬운 드래프트였다. * OB 베어스 : '''[[김기범(야구)|김]]거[[이진(야구)|이]] 하지만 2차 지명은 다르다!'''. 동전던지기를 이겼다! 그런데 이 해 투수 최대어였던 김기범을 거르고 미래 가능성을 본다는 이유로 좌완 이진을 픽한다.[* 김기범은 혹사 당해서 어깨에 부상이 있을 것이고, 이진은 어깨가 쌩쌩하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한다.] 결과는 희대의 망픽. 첫 해에는 스윙맨으로 그럭저럭 활약했으나 이후에는 폭망했다. 게다가 김기범이라는 희대의 오나쌩을 라이벌 구단에게 안겨줬으니 매우 큰 마이너스 효과였다. 그나마 사이드암 투수였던 김동현이 선발에서 2, 3년 활약한 정도인게 최고의 실적이었다. 하지만 2차 지명은 그래도 MBC보다 더 나았는데, 구동우는 OB 투수진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이명수는 [[안경현]] 이전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2루수로 꼽힌다. 곽연수도 백업으로 괜찮았던 편. * 삼성 라이온즈 : '''1988올림픽만 끝나길 기다렸지만'''. 1988 서울 올림픽으로 아마추어로 남아 있도록 요구받았던 [[강영수(야구)|강영수]]와 최해명을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강영수는 낮은 타율로 인해 저평가를 받다가 OB로 이적한 뒤, 극강의 [[공갈포]]로 이름을 날렸고, 최해명도 기대만큼은 성장하지 못한 채 대타 요원으로 커리어를 마쳤다. 2차 1라운더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삼성의 연습생으로 있던 좌완 박용준이었는데, 해태의 양해를 받아 지명하였다. 박용준 또한 [[김성근]] 감독 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혹사당하다가 1993년 이후 부상으로 하락세를 겪다가 1995년에 은퇴했다. 그래도 고졸신인 연고지명에서 [[556#s-4|1990년대 중반의 암흑기]]에서 맹활약한 [[김상엽]]을 뽑은 것이 유일한 낙이라 할 수 있겠다. * 롯데 자이언츠 : '''V2의 기반을 마련하다'''. 1차 지명에서 롯데는 원하는 선수를 깔끔하게 뽑았다는 평이었다. 김청수와 서호진은 좋은 투수였는데, 특히 김청수는 이후 4년간 [[윤학길]]에 이은 2선발급의 활약을 보인다.(그러나 1991년 말 병역비리 사건 때 어머니와 누나가 입건된 일로 인해 기량이 하락하면서 그저 그런 선수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김선일도 준주전급 포수로 수비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김인호(야구)|김인호]]는 롯데에서는 터지지 않았지만, 태평양 → 현대에서는 내외야를 넘나들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1996년 플레이오프 자진 헤드샷(...)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해 가장 빛나는 별은 2차 2라운더 ~~델동님~~[[이종운]]이었다. 남두오성으로 이름을 날리며 롯데 V2의 선봉장이 되었다. 그 외에도 3라운더 윤동배도 투수진에서 궂은 역할을 하며 활약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상동 야구장]]의 소장이다. * 빙그레 이글스 : '''다이너마이트 타선에 불을 붙이다'''. 1차 지명자인 [[강석천]], [[황대연]]의 가세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더 강하게 타들어갔고, 진정필도 한화 투수진에서 가장 빛나는 별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빙그레의 첫 전성기를 이끌었다. 2차 지명도 괜찮았던 편이라, 한 해 반짝이긴 했지만 신인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김락기, 한국시리즈에서 [[김영덕]] 감독의 작전을 무시하면서 탈락의 원흉으로 지목당한 이종호도 나름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포수 [[박선일]]은 팀을 옮기고야 빛을 발한 선수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다. 6픽 김성재는 계약금을 이유로 입단하지 않았고, 이듬해 1990년 LG 트윈스의 2차 4순위 지명을 다시 받아 입단했지만 시즌 중 성적 부진으로 방출당했다. 이후 1993년부터 2015년까지 모교인 영남대 야구부 타격코치를 맡아 아마야구계에서 좀더 이름을 알렸고, 2015년 말 경운중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 해태 타이거즈 : '''되는 집은 뭘 해도 된다'''. 이 해 호남출신의 훌륭한 선수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스카우트 팀에서도 행복한 비명을 지른 해였다.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3인방인 이광우와 이강철, 그리고 1988년 지명한 조계현까지 한꺼번에 입단하게 되어 계약금 문제로 배부른 걱정을 할 정도였다. 다만 이강철은 한희민을 잇는 언더핸드 계보이자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 중 하나라는 평을 듣게 되지만, [[이광우]]는 이강철보다 더 높았던 기대치와는 달리 해태에서는 3년간 부진한 모습만 보였고, [[박노준]]을 상대로 OB에 트레이드된 후 제법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게 된다. 장호익은 포수 경쟁에서 밀려 1군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 드래프트에서 뽑힌 호남권 선수만 해도 박준태, 김선진, 정명원, 김인호 등이 있는데, 이 선수들의 활약상에 비하면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드래프트라 할 수 있다. 다만 고졸연고 지명이었던 강태원은 좌완 불펜으로, 2차 1지명이었던 윤재호는 유격수로 좋은 활약을 보인다. 3지명으로 들어온 문승훈은 나중에 심판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