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미약품 (문단 편집) == 역사 == 임성기 회장[* [[중앙대학교/학부/약학대학|중앙대학교 약학과]]를 졸업]이 1966년 서울 종로에 만든 임성기약국에서 출발했다. 임성기약국은 약사로는 처음으로 흰 가운을 입고 근무를 한 약국으로 알려져있으며, 매독 등의 성병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해준 것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이후 임성기는 약국 운영으로 번 자금을 모아 1973년 임성기제약을 설립하면서 제약산업에 뛰어들었다. 같은해 사명을 한미약품공업으로 변경했다. 1984년 계열사인 한미정밀화학을, 1986년 한미약품 연구센터를 각각 세웠고, 1988년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2000년에 [[항암제]]인 파클리탁셀을 입으로 먹는 버전으로 개발한 것이 [[특허]]를 따고 [[미국 식약청]]의 시판 허가를 통과하면서 [[수출]]길이 열려 그때부터 기업이 성장하게 된다. 2003년 회사 이름을 한미약품으로 바꿨다. 개량신약과 퍼스트 제네릭 등 처방전 시장에서 강했기 때문에 의약분업이 이루어진 2000년대 이후 특히 크게 성장했다. 한국의 제약회사 중 독보적으로 많은 [[R&D]]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업계에서 [[R&D]]투자 비중이 10%를 넘는 곳은 7개에 불과한데 13년동안 9000억원을 쏟아부며 독보적으로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 신약 개발을 이루고 약 1000개의 [[특허]]를 따냈다.~~한국의 [[아스트라제네카]][* 아스트라제네카 또한 오너였던 [[발렌베리]] 가문의 뚝심 덕분에 20년이 넘는 개발이 가능했고, [[로섹]]이라는 위장약을 개발해 수백억 달러의 수익을 냈다.]~~ 2010년 [[지주회사]] 체제 선언에 따라 한미약품이 [[한미사이언스]]에서 분리된 이후 제약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2015년 초에는 신약기술 수출 등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며 한국 [[바이오]]회사 주식들의 동반 급등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5년 2분기 실적이 예상을 크게 밑돌아 바이오주 단체가 대폭락하는 사태를 맞게 하기도 했었다. [youtube(w8JP7ZRqzT0)] 2015년 11월 6일, 무려 5조 원에 달하는 한국 제약산업 사상 최대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 체결을 [[http://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151105800183|발표]]하면서 [[한미사이언스]]와 더불어 폭풍 [[가격제한폭|상한가]]를 맞이했다. 이로인해 [[KRX]] 바이오테크 지수가 급등하기도 했다. 기술 이전이 아니라 '끝까지 개발하지 않았다'고 하며 끝까지 개발했음 수십조원은 벌었을 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제약산업이라는게 1~3상 임상시험과 시판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해야 하므로[* 임상 3상기준 현찰로 2000~3000억원 정도 든다(1/2상은 빼고). 그리고 시판허가 과정에서도 1~3상 임상에 해당하는 돈이 들고 시판허가 따내고 나서도 공장감독 등등 추가로 돈 들어갈 곳이 천지다. 2015년 현재 한국 신약개발 제약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라서 이만한 돈을 조달하기 힘들다. 세계에서 진짜 현찰박치기가 많이 필요한 곳이 제약산업이다.] 한미약품 입장에서는 글로벌 제약사한테 [[특허]]를 팔고 로열티를 받으면서 다른 사업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반론도 있다. 아무튼 이 계약으로 한미약품은 이때까지의 [[R&D]] 적자를 한방에 메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도 점점 한미약품을 따라가려는 분위기가 업계 전반에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