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한민구 (문단 편집) == 생애 == 1951년 8월 30일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에서 아버지 한상대(韓相大, 1907. 8. 25. ~ 1989. 5. 3.)[* 초명 한점용(韓点龍).]와 어머니 [[임(성씨)|부안 임씨]](扶安 林氏) 임을순(林乙順, 1914. 11. 20. ~ 1999. 9. 14.)[* 임태철(林台喆)의 딸이다.] 사이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내수초등학교(44회), [[내수중학교]](12회), [[청주고등학교]](43회)를 졸업하고, 1975년부터 보병 소위로 지냈다. 참고로 [[육군사관학교]] 제31기 출신이다. [[위탁교육]]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들어갔고, 1979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다. 영관급 장교이던 1992년에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 인연으로 2014년에 연세대학교에서 연세를 빛낸 행정인상을 받았다.] 군 경력으로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육군사관학교]] 전사(戰史)학과 교수를 지낸 이력이 있으며, 이후에는 정책과 기획 보직들을 역임했다. 1994년 9월부터 1996년 3월까지 [[제50보병사단]] [[제123보병연대]]장을 맡았고, 1997년 3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국방부 정책기획국 정책조정과장을 맡았다. 1999년 11월에 준장 진급에 성공하여 [[수도군단]] 참모장을 잠깐 하다가 2000년 4월에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으로 영전했고, 2002년부터 1년간 전략기획처장을 하다가 2003년 4월에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53보병사단]]장과 국방부 국제협력관과 정책기획관을 거쳤다. 2006년 12월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령관]]을 지냈고 정권이 바뀐 이후에는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육군참모차장]]을 맡았다. 2009년 9월에 [[김태영]] 국방부 장관(육사 29기)이 취임하면서 군 수뇌부가 전부 교체될 때 야전군사령관 경력 없이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다.[* 이 무렵 병 입영식이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로 인해 실시되지 않았다가 2010년 2월부터 재개됐는데 2010년 2월 1일 다시 열린 [[육군훈련소]] 입영식에 참모총장으로서 직접 참석했다. 그때 입대했던 사람들은 난데없는 포스타 등장의 임팩트 탓인지 전역 후에도 이를 기억하고 있다.] 1기수 선배인 [[이상의]] 합동참모의장이 천안함 사건 당시 보인 처신 때문에 문책성 경질이 이뤄지자 9달 만인 2010년 6월에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고 2011년 10월에 전역했다. [[야전군사령관]]을 지내지 않았는데 그동안 맡았던 보직 등을 보면 작전통 [[야전군]] 지휘관보다는 안보전략과 국방정책을 다루는 정책형 군인이다.[* 역대 장관 중 비슷한 커리어의 정책통으로는 [[김태영(군인)|김태영]] 전 국방장관, [[이종섭]] 전 국방장관 등이 있다.] 육군 대장 진급을 위한 커리어에서 제일 중요한 두 개의 보직이 [[사단장]]과 [[군단장]]인데, 대장 진급자들을 보면 사단장이나 군단장 중에서 최소 1개는 전방 야전부대 지휘관 경력이 있는데, 한민구의 경우 사단장과 군단장 모두 전방 야전부대 경력이 없다.[* 경력 문단에서 후술하겠지만 소대장과 중대장, 대대장은 전방 야전부대에서 지냈지만 연대장 역시 후방부대인 [[제50보병사단]]에서 지냈다.] 군단장급 직위를 수방사령관[*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와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는 [[군단]]급 기능사령부이다.]으로 보직 받긴 했지만 이 역시 전방 야전부대는 아니다.[* 수방사는 엄밀히 따지면 지원부대(교육사, 군수사)가 아닌 야전부대이긴 하지만...] 육군 출신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합동참모의장]]은 [[야전군사령관]] 경력이 필수나 다름 없을 정도로 [[야전군사령관]]을 거치고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하는데 한민구의 경우 야전군사령관 경력 없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다.[* 합동참모의장 보직이 생긴 1954년부터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한 35명의 육군 대장 중에서 27명이 야전군사령관 경력을 거치고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다. 야전군사령관 경력 없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한 8명 중 6명은 1980년 이전에 임명됐고, 21세기 들어 야전군사령관 경력 없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한 사람은 한민구가 유일했다. 2022년 6월 [[김승겸]] 장군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지명됐는데 이쪽도 야전군사령관 경력이 없고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서 영전했다. 하지만 이는 2018년부로 [[제1야전군사령부]]와 [[제3야전군사령부]]가 [[지상작전사령부]]로 합쳐졌기에, 대장 보직 중 전방 야전군 사령관이 하나밖에 안 남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찌보면 관운이 매우 좋은 모양.-- 다만 인사 이동이라는게 군 통수권자나 장관의 정무적 판단이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던 만큼 한민구 본인이 야전군사령관을 안 하고 참모총장에 간 것은 본인의 의도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가 김태영 장관 임명 후 장관의 원할한 군 지휘관 보장을 위해 30기에서 합참의장을 내면서 31기를 바로 참모총장으로 끌어들인 것이 원인. 1군 사령관인 김근태, 연합사부사령관인 이성출은 전부 전역 조치되었고, 30기는 이상의 3군 사령관 1명만 남겨서 합참의장을 시켜주고, 31, 32기를 동시에 끌어서 대장 계급을 부여했다.] 전역 후 국회의원 출마(충북 청주)가 예상되었으나, [[새누리당]]의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국방부장관으로의 취임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