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복/양식 (문단 편집) == 상세 == 옛부터 [[삼국시대]]~[[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복은 기본적으로 상유하고(上襦下袴)[* 위는 저고리, 밑은 바지.] 양식을 따르고 있다. 또한 아한대성 기후조건 덕에 몸을 감싸여미는 y형식의 의복문화가 잘 정착할 수 있었다. 참고로 중국의 [[한푸]]는 기본적으로 위아래 한 벌인 통옷이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 탓에 대체로 상의하상(上衣下裳)[* 위는 옷, 밑은 치마]이라 불리며 차별되는 의복문화를 가지고있었다. 전체적으로 북방(알타이)계 [[호복]]의 양식을 근간으로 두며, [[https://m.cafe.daum.net/SoulDresser/FLTB/330664?svc=topRank|기원전 7세기의 기마민족 스키타이의 의복문화에서도 꽤나 영향을 받았다.]] 둘다 유목민족 특성상 상의와 하의가 명확히 구분되는것이 특징이며 바지를 입는다. 이러한 양식은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벽화를 보면 그때부터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의 치마 안을 보면 똑같이 바지를 입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동시에 스키타이의 영향인지 그들과 같은 점박이 무늬를 새겨만들어 즐겨입었다.] 때문에 대륙과 반도는 서로다른 의복양식과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이것을 가지고서 과거 중국쪽에선 이를 문제삼아 한복을 오랑캐의 옷이라며 폄하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말해주는 건 몇몇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한복의 근원은 중국이다." 라는 의견에 대한 반증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한민족의 전통의상은 오랫동안 주변국들의 영향을 받아왔지만 큰 변화를 보이진 못하다가 [[고려]]에 이르러 [[원나라]]에게 큰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이때 기존의 [[허리띠]] 대신 한복의 상징인 [[옷고름]]이 생겨났다. 단순히 가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의도적으로 길이를 줄여 빈부분을 장식으로 채운다는 식의 의복문화가 생긴것도 이때부터이다. 이후 시간이 흐름에따라 다양한 요소들이 사라지거나 파생되었으며, [[조선]]에 이르러 밑의 양식들을 끝으로 전통의상이 완성되었다. || [[파일:한복삼총사.jpg|width=100%]] || [[파일:한복사총사.jpg|width=100%]] || (일제강점기 초중반의 사진들, 하나의 양식이 아닌 다양한 양식의 한복을 입었다.) (문서의 설명을 위해 첫번째 사진을 삼총사라 명함) 간혹 사람들 사이서는 한복 문서에 올라와 있는 의상 정리표처럼, 한 시기의 한 대표양식을 떠올리며 "조선후기에는 모두가 짧고 노출하는 옷만 입었다." 라는 생각들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정리방식이 잘못되었다 말할 순 없지만, 어느정도 정정할 부분이 있다. 정확한 한복의 변천사를 표현하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저고리가 "짧은 양식으로 변화" 가 아닌 "짧은 양식도 추가" 이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보여지듯 후기~구한말 시절이라도 이전시기의 한복양식들은 여전히 존재해왔으며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묘사되는 것처럼 한 시기에 하나의 양식이 아닌, 다양한 양식들이 다함께 복합적으로 존재하던 것이 한복문화였다.[* 어찌보면 이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이다. 역사가 어느정도 있는 중국과 일본도 대표적인 이미지의 옷들을 제외하고도 세세히 따지면 그 수가 다양하다. 그저 자료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이지 없는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바지or치마저고리 만 해도 시대별로 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들로 표현된다. 외투라 하더라도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내부를 세세히 따져보면 그 수가 절대 만만치 않다. [[도포]]나 [[쾌자]]와 같이 유명한 것들은 물론이고, 구조적, 형태적인 측면에서 볼때 뚜렷이 구분되지 않더라도 각자다른 성격을 지닌 다양한 한복들이 존재한다. [[한복/종류]] 참고, || [[파일:긴저고리(바지).png|width=100%]] || [[파일:여성바지.jpg|width=100%]] || [[파일:중기한복 바지.png|width=100%]] || 참고로 여성의 한복치마 안쪽으로해서 속옷, 속바지정도만 입었던 것으로 묘사되어지기도 한다. 허나 사진속 치마 밑 발목부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여성또한 상유하고의 양식에 치마안은 무조건 바지를 입었다. 나아가 사진과 기록을 통해 남성처럼 바지차림으로만 생활하는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으므로, 여성들이 치마가 없이 바지만 입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