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복/양식 (문단 편집) === 중저고리 양식 === ||<#c00d45> '''{{{#f0ad73 중저고리 한복 (흉통)}}}''' || || {{{#!folding 펼치기 · 접기 || [[파일:중간저고리2.png|width=100%]] || [[파일:중기한복9.png|width=95%]] || || [[파일:중기한복7.png|width=100%]] || [[파일:중기한복8.png|width=100%]] ||}}} || ||<#c00d45> '''{{{#f0ad73 중저고리 한복 (가슴 밑)}}}''' || || {{{#!folding 펼치기 · 접기 || [[파일:중기한복6.png|width=100%]] || [[파일:중기한복5.png|width=90%]] || || [[파일:중기한복4.png|width=100%]] || [[파일:중간저고리13-1.jpg|width=100%]] ||}}} || ||<#c00d45> '''{{{#f0ad73 중저고리 한복들}}}''' || || {{{#!folding 펼치기 · 접기 || [[파일:중기한복.png|width=100%]] || [[파일:한복a.png|width=100%]] || || [[파일:중기한복3.png|width=100%]] || [[파일:중간한복2.png|width=100%]] ||}}} || 당시 조선에서 가장 인기있던 양식이자, 6.25당시와 이후에도 살아남았으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관광지 등지에서 가장 많이 입혀지는 옷이기도 하다.[* [[재래시장]] 또는 [[마을]]처럼 여러인물들이 모이는 곳의 여성들을 보면 대부분이 이러한 양식을 입었으며, 후기양식보다 더 쉽게 찾아볼수 있다. 서구양식이 판치던 일제말기~6.25시절의 사진에서도 이 양식이 확인될 정도였으니, 다른 양식들에 비해 꽤나 인기있던 옷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존에 있던 전기양식의 단점들을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결과이며, 설명할 이후의 양식들에게 기초가 되어지는 양식이기도 하다. ■모양의 실루엣을 가지며 평균적으로 저고리가 (가슴 밑~흉통)까지 내려온다. 저고리의 형상이 | 자로 나아가며 겨드랑이 부분이 생략되었고 저고리의 길이가 전보다 줄어들었는데 줄어든 만큼의 빈부분을 매우는 것은 [[치마|치마허리]]와 [[가슴가리개]]라는 의상 겸 장식이다. 이러한 노출장식이 생겨나면서 한복은 3피스로 발전하게 된다. 덕분에 초기양식처럼 쭉 연결되지않고, 위아래가 더 명확이 구분되어 인체의 실루엣을 더욱 살릴 수 있었다. 이러한 장식기법은 같은 중기양식이라도 각각 다르게 표현되는데, 노출이 아예 없는 경우, 허리부분으로만 살짝 들어내는 경우, 후기양식과 비슷하게 크게 들어내는 경우 등 다양한 양상들을 보인다.. "■모양의 저고리, 줄인만큼 생기는 노출장식" 이러한 개념의 미적요소들은 계속 이어지고 변형되어 추후에 생겨날 모든 한복양식들에게 기초가 되어 구조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장점으로는 기존의 초기양식의 단점들을 대부분 해결했다는 것이다. 신체적인 실루엣이 드러나게 된 점, 부풀림 현상 완화, 새로운 장식문화 개척 등 한복이란 의류문화에 큰 발전이 있었다는 점이다. 단점으로는 위에서 말했듯 다른양식들의 기초가 되어지는데 단순히 길이를 바꾸거나, 서구적인 장치를 추가하는 등, 이전과 같은 성장을 보이지 못하고 단순히 제자리걸음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는 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