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빛은행 (문단 편집) == 역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빛은행 합병역사.jpg]]}}}|| || 한빛은행의 합병 역사. || [[1997년 외환 위기]] 직후 정부 주도로 부실금융기관 개혁에 있어 퇴출·합병 등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다. 1998년 5월에만 5개 시중은행이 퇴출당한 직후 한일은행과 한국상업은행이 자진 합병을 선언하면서 1999년에 한빛은행이 탄생하였다. 존속 법인은 한국상업은행으로 정했으며 [[비씨카드]] 회원사 자격은 한일은행 쪽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한동안 현금카드 내부 은행 코드가 구 한일은행이 쓰던 24번이었으며 현재도 [[우리카드]]가 [[비씨카드]]에서 "우리카드(한일)"로 표기된다.] 한일은시스템, 상은시스템, 한일리스, 상은리스, 한일할부금융 등 중복 업종 자회사를 통합해 한빛은시스템과 한빛할부금융으로 각각 출범시켰고 양행 노조도 통합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빛종합통장.jpg|width=25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두개의 마그네틱선.jpg|width=250]]}}}|| ||<-2> 당시 통장 || 통합 이전 상업은행의 마그네틱선은 후면 우측에 세로로, 한일은행의 마그네틱선은 일반적인 위치에 가로로 붙어 있었으며 따라서 한빛은행의 통장은 전산통합 이전인 과도기 기간에도 거래에 불편이 없도록 마그네틱선을 2개 붙이고 나왔다. 우리은행으로 바뀌고 나서도 유지되었으나 차세대전산 개통 이후에는 상업은행 마그네틱선을 제거하여 2020년대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실자산 투성이었지만 합병 직후 자산 규모로 국내 1위를 차지했다. 다만 전신이 [[조상제한서]]이다 보니, 가계금융보다 기업금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합병한 후에도 정상화가 걸음마였던 단계에서 2000년에 정치권을 혼돈으로 몰아넣은 한빛은행 불법 대출 사건이 터지게 되었고, 한빛은행은 이 사건으로 불과 2년 만에 행명을 바꾸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쇼크를 받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1_4_20_한빛은행_약수동지점.jpg|width=500]]}}}|| || 2001년 4월경 한빛은행 약수동지점[br](구 한일은행 약수동지점. 현 우리은행 청구역지점) || 1936년 이래 [[부산광역시청]]의 제1금고를 맡아 왔으나 2001년 [[부산은행]]에 제1금고를 넘겼다.[* [[부산광역시]] OCR 시스템을 구축한 은행이 바로 한빛은행인 셈.] 2001년 4월 [[우리금융그룹]] 출범 뒤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2002년 [[평화은행]]의 은행업무 부문을 인수하였으며[* [[평화은행]]은 우리신용카드로 사명을 변경하고 한빛BC카드와 평화VISA카드업무를 전담하게 되었으나, 카드사태로 인하여 카드사업 부문이 [[우리은행]]으로 합병되었다. 그 이후 평화VISA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참고로 이 때의 우리신용카드는 [[우리카드]]와 연결되는 회사지만, 법적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해 4월 현재의 [[우리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하였으며 이 때 로고에서 붉은 부분만 뺀 것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로고의 붉은(赤) 부분이 [[적자]](赤字)를, '한빛'이 '많은 [[빚]]'을 연상시킨다는 지적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불어, 한빛은행 로고가 붙어있는 통장이 우리은행 스티커가 붙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