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사군 (문단 편집) == 여담 == * [[일본 제국]]은 한사군을 통해 "중국의 지배를 받던 열등한 한민족"이라는 식의 타율성론을 주장했다. 그런데 정작 한사군에서 발흥한 고구려를 한국사가 아닌 퉁구스 민족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한사군과 접점이 적었던 신라만이 한국사라고 주장하는 등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을 보인게 코미디. * [[코에이]]의 [[삼국지7]]에서도 낙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삼국지 10]]의 경우 당시 [[동북공정]]이 사회적 이슈가 되던 상황이라 [[게등위]]에서 이걸 문제 삼았다. 결국 국내판에서는 ‘동답’으로 개명 당하고 위치도 [[압록강]] 이북으로 변경되었다. * 이 당시에 대량의 후기 [[상고한어]] 혹은 전기 [[중고한어]] 어휘가 들어와 한국어의 한 기층을 이루었다고 보는 언어학자들도 있다. 한국어의 [[고유어]]로 취급되는 일부 어휘[* [[그릇]], [[붓]], [[먹]] 등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문물들과 관련된 어휘들이 특히 그렇다. 심지어 [[밀]], [[바람]], [[쇠]] 등도 이에 해당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가 저 당시의 한자음과 많이 닮아있다는 점이 그 근거로 지목된다. * 훗날 [[당나라]]는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후 한사군과 비슷하게 [[안동도호부]], [[웅진도독부]], [[계림도독부]]를 설치하여 당나라가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신라]]가 여기에 반발해서 [[나당전쟁]]이 일어나 실패한다. 계림도독부는 이름만 지었을 뿐 한순간도 실제로 작동하지 못했고 안동도호부와 웅진도독부는 10년 정도 운영하다 요동으로 쫓겨났다. 이는 기원전 1세기와 달리 7세기에는 한민족이 상당한 국가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게임)|바람의 나라]]에는 '대방성'이라는 이름의 성이 [[중국(바람의 나라)|중국의 성]]으로 되어 있으며, 지도상으로는 요서-[[산해관]] 일대로 표시되고 [[십이지신의 유적]]에서 국경지대를 지나야 한다는 점에서 난하 요수설에 따른 대륙 한사군설을 지지하는걸로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