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성고등학교 (문단 편집) == 설립자 김주익 == || [[파일:한성고_김주익.jpg|width=100%]] || || {{{#white '''겸산 김주익'''}}} || 설립자 김주익(1898 ~ 1950?)의 생애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김주익은 [[함경남도]] [[북청군|북청면]][* 1931년에 북청읍으로 승격]에서 태어나서 1928년에 개교한 경성실업전수학교를 1933년에 완전히 인수하여 훗날 한성중고등학교를 세운다. 마침내 1941년 현 북아현동의 부지에 학교를 세우게 되는데 이 때 현 본관을, 2층까지만 짓게 된다.[* 이 때 돈을 들여 [[백두산]]에서 목재를 사왔다는 말이 있지만, [[학교]] [[전설]]로 으레 전해지는 일화 같은 것으로 파악되며 신빙성은 낮다.] 본관 3층이 생긴 것은 [[6.25 전쟁]] 후의 일이다. 한때 김주익과 관련해 친일 의혹이 돌기도 했다. 일본식 이름인 금본헌명이라 창시개명했고, 조선교육회 기관지 <文交의 朝鮮>의 특집기획인 ‘징병제도 실시의 감격’이라는 특집기획에 글을 쓴 교장 4명 중 한 사람이다. 다만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고, [[창씨개명]]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에는 좋든 싫든 학교 운영과 같은 사회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개명이 필수였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친일이라고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오히려 김주익과 관련된 진짜 논란은 친일이 아닌 친북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한성학교는 인민군에 의해 점령된 [[서울]]을 떠나 [[부산]]에 임시 학교를 개교했지만, 정작 [[교장]] 김주익은 '''[[월북|북한으로 간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납북이라 주장하지만 그 정도로 중요도가 높은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에 납북의 근거는 희박하며, 사실상 자의적으로 월북을 했다고 봐야한다. 월북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함경남도]] 태생이기 때문에 [[고향]]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있을 뿐. 월북했기 때문에 국내에는 휴전 이후 활동 기록이 없으며, 따라서 김주익과 관련해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겉으론 납북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월북인 것을 학교 측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학교 홈페이지에는 설립자 김주익을 소개하면서 해방 이전의 활동 내역과 학교 설립 이념만을 언급할 뿐, 해방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의 사망시기에 대해서는 설이 갈리는데 학교 측은 사망시기 미상이라 주장하고 있다. 북한에 관련 자료가 남아있을 수 있긴 하지만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까지는 아니었으므로 관련 연구는 없고, 관련인인 김성숙 이사나 김병호 이사장이 회고록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아래는 해방 이전 국내에 존재했던 '동양극장'의 역사에 김주익이 언급된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한성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이었던 김주익이 고세형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저당권자와 직접 동양극장의 매매를 결정해 버림으로써, 최독견은 벌여놓았던 사업들을 채 수습할 시간 여유도 없이 19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부도내면서 어처구니없이 동양극장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 >최독견이 19만원이라는 거액을 부도내게 된 것은, 호탕하고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가 극장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배우와 극작가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기 위해 무리를 해가면서도 철저하게 월급제를 실시했고 중요한 인물들에게는 요리집에 외상까지 터주는 등 낭비와 사업의 규모가 확대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최독견 자신은 극장 앞길 건너에 이왕직 소유의 조그만 건물을 월세로 빌려 사무실 겸 숙소로 쓰면서 배우 차홍녀와 동거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채권자들은 곧 청산위원회를 조직하여 소송을 제기했으나 최독견 개인에게 그런 엄청난 부채를 갚을 만한 재산이 있을 턱이 없었고, 그가 곧 차홍녀에게만 알린 채 만주 안동의 중국촌에 은둔해 버림으로써 채권단은 흐지부지 해산하고 말았다. >---- >《우리극연극 6, 김미도, 동양극장의 재조명 중 동양극장과 임선규》 [[http://hall.munhwa.com/hall/dongyang.php|출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