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성부 (문단 편집) == 개요 == >城高鐵甕千尋 / 성은 높아 천 길의 철옹이고 >雲繞蓬萊五色 / 구름은 봉래 오색을 둘렀구나 >年年上苑鶯花 / 해마다 정원에는 앵화 가득하고 >歲歲都人遊樂 / 세세로 도성 사람 놀며 즐기네 >---- >[[정도전]],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 中 도성궁원(都城宮苑) '''한성부'''는 [[조선]] 수도이자 최대도시며 현 [[서울특별시]]의 [[전신]]이다. 이와 동시에 이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언론 등에서 '서울시'라는 단어를 지역으로서의 '서울특별시'를 일컫는 단어로 사용함과 동시에 '[[서울시청]]'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용례이다. [[1394년]] [[11월 21일]] 부로 조선의 수도가 되었고, [[1395년]] [[6월 6일]]에 한양부(漢陽府)에서 한성부(漢城府)와 [[양주시/역사|양주군]]으로 분리, 개편된 이래 [[1910년]] [[10월 1일]] [[경성부]]로 개칭되기 전까지 만 515년 간 존속한 행정구역이다.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기 때문에 한성부가 분리 설치된 이후에도 관습적으로는 한양이라고도 불렀으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서울이라고 널리 불리기도 했다. 그 외에도 도성(都城), 경조(京兆), 경도(京都), 경성(京城)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모두 '[[수도(행정구역)|서울(일반명사, 수도)]]'라는 의미로, [[중국]] [[난징|남경]], [[베이징|북경]] 별칭과 (각각 금릉, 북평 등을 제외하고) 같다. 일례로 [[베이징대학|북경대학]]은 경조학당이었다. 조선후기 기준으로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중에서도 [[종로구]]와 [[중구(서울특별시)|중구]] 전지역, [[동대문구]] 대부분([[장안동(서울)|장안동]] 제외), [[서대문구]] 거의 전지역([[남가좌동]], [[북가좌동]] 각일부 제외), [[성북구]] 전지역, [[용산구]] 전지역, [[강북구]] 대부분(우이천 이북지역 제외), [[성동구]], [[마포구]] 대부분([[상암동(서울)|상암동]], [[망원동]] 일부 제외), [[은평구]] 대부분([[수색동]], [[증산동]], 신사동 일부 및 [[진관동]] 제외)와 [[영등포구]] [[여의도|여의도동]]이 한양에 해당되는 지역들이다. 이외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과 효자동도 해당된다. 한성부는 [[전주부]], [[경주부]], [[평양부]] 등 다른 [[부(행정구역)|부]](府)와 다르게 [[도(행정구역)|도]](道)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행정구역이다. 상위 행정구역을 두지 않았다. 한성부는 정2품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다스렸다. 해당 관직은 조선 초에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했다가, [[1466년]]([[세조(조선)|세조]] 12년)에 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명칭이 바뀌고, [[1567년]]([[명종(조선)|명종]] 22년)에 판윤으로 격상된 것이다. 본래 부윤은 종2품인데, 한성부는 수도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판서]]와 같은 정2품에 놓였던 것이다. [[서울특별시장]]이 광역자치단체장임에도 불구하고 1961년부터 다른 광역시장이나 도지사들과 같은 [[차관]]급이 아닌 [[장관]]급으로 대우를 받는것과 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