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신(한왕) (문단 편집) == 생애 == 본래 한왕 신의 숙부 한왕 성(成)은 [[장량(전한)|장량]]의 추천을 받아 [[항량]]에게 한왕(韓王)으로 봉해져 있었다. 하지만 [[범증]]은 장량을 경계해 한왕 성을 감금하고 봉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결국 한왕 성은 살해당하였으며 대신 항우의 부하 정창이 한왕으로 봉해졌다. 장량은 나중에 신을 유방에게 추천하여 [[태위]](太尉)로 삼았다. 물론 한왕 신 역시 정창을 몰아내고 한나라의 성들을 점령했고 유방에게 한왕(韓王)의 자리를 인정 받았다. 참고로 신은 유방이 최초로 봉한 제후왕이었다. 어느 정도 한의 유민들을 배려한 정치적 결정으로 보인다. 묘하게 장량은 나중에 육국의 후예를 나눠 봉하자는 [[역이기]]의 계책에는 반대했지만 한신은 예외적으로 육국의 후예임에도 왕위를 받았다. 이는 한신이 육국의 후예라는 것 이외에도 유방 휘하에서 군공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듯. 이후 유방이 형양에서 달아난 후 ~~[[위표]]~~[* 배신한 전적을 경계하여 주가와 종공이 살해했다.], 주가, 종공과 함께 형양의 수비를 맡았다. 형양이 함락된 후 항우한테 항복했지만 탈출하여 한나라로 돌아왔다.[* [[항우]]가 자신의 숙부를 죽인 적도 있는 데다가 본인도 항우의 부하인 정창을 죽이는 등 서로 화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초한전쟁]]이 종결된 다음에는 [[태원]]군(太原郡)을 한국(韓國)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왕 신은 이곳으로 봉지가 정해진다. 실질적으로 [[흉노]]를 정면으로 막는 북방의 번국(蕃國)이 된 셈이다. 하지만 기원전 201년에 마읍에서 흉노에게 포위되었고 한신은 자주 사자를 보내 화해를 요청했으며, 한나라에서 이를 구원했지만 한신이 자주 사자를 보낸 것으로 인해 의심을 받아 책망받자 토사구팽을 우려해 9월에 흉노로 투항했다. 나중엔 진희와 손을 잡고 [[외환죄|회노 기병을 이끌고 쳐들어왔는데]],[* 공교롭게도 회음후 한신이 진희와 모의한 혐의로 처형당한 것과 똑같은 시기였다. 게다가 진희와 연루되었다는 점도 둘다 동일하다. 한신의 모반 혐의가 이쪽이 한 짓을 이름이 똑같아서(...) 뒤집어 쓴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한왕 신을 상대한 장수 진무(시무)는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폐하께선 패해서 어쩔 수 없이 달아났던 것으로 여기고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달래보려 했지만 한신은 초한전쟁 때는 항우에게 붙잡히고 지금은 흉노에 의탁해있는 자신의 처지가 새삼 비참해졌던지 돌아가고 싶지만 이젠 불가능하다는 말로 이를 거절하고 싸우다가 죽었다. 한신이 흉노로 망명하는 도중 퇴당성(頹當城)에서 서자를 낳아 이름을 퇴당이라고 하였으며, 동시에 한신의 태자 역시 아들을 출산하여 이름을 영(嬰)이라고 하였다. 훗날 문제 시절 퇴당과 영이 다시 귀순해 왔는데, [[연좌]]당하기는커녕 각각 궁고후(弓高侯)와 양성후(襄城侯)에 봉해졌다.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자 한퇴당은 용맹을 떨쳐 반란을 평정하는데 으뜸이었으며, 작위는 손자에까지 이르렀다. 한영의 서손인 언(嫣)과 열(說)은 무제에게서 총애를 받아 영행이라 일컬어졌으며 한열의 손자 증(曾)은 거기장군이 되어 선제의 공신으로 이름을 날리는 등, 한(韓)왕가는 한(漢)시대에 명문 귀족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전국칠웅]] 직계 후손 중에서는 함양성 방화와 더불어 씨도 남지 않은 진나라 영씨 등 다들 [[배드엔딩]]으로 끝났는데 이쪽만 유일하게 압도적으로 결말이 좋다.[* 물론 나머지들도 결말이 좋지는 않아도 씨는 남아서 송태조 조광윤은 조나라의 마지막 왕(?)인 조가의 후손이고 왕망은 제나라의 후손이다.] 이 인물의 자손들 중에 특이한 곳에 등장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서진]]의 권신 [[가충]]의 아들 [[가밀]]이다. 본래 한신의 직계자손인 한밀인데, 가충이 아들이 없이 죽어서 외손자인 한밀을 가밀로 고쳐 양자로 삼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남풍]]이 주살될 때 함께 끔살되어 이 인물의 종가도 이 때 망한다. 그래도 전후 한왕조, 위나라, 서진까지 종가가 버티었으니 중국사치고는 엄청 오래 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