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신대학교 (문단 편집) == 같이 보기 == * 이하 학교들의 역사는 한신대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 [[성공회대학교]] * [[숭실대학교]] * 이하 인물들은 한신대학교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 [[김약연]]: 1899년 만주로 넘어가 북간도 화룡현에 자리를 잡고 명동학교와 간민교육회를 설립하여 나라 없이 만주로 온 동포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 곳을 북간도의 '''명동촌'''이라 불렀고, ‘만주의 대통령’으로 불릴만큼 존경 받던 규암 김약연이 [[함경도]]에서 130여명을 이끌고 정착해 민족 운동의 산실이 된 곳이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문익환]] 목사 집안과 [[윤동주]] 시인 집안, 김약연 집안 등과 함께 5가문이 집단적으로 이주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용정에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조선인 공동체가 생겨난다. 한때 [[안중근]] 의사가 문 목사 집에 머물면서 총연습을 했다고 한다.''' 한신대의 초석을 심은 모든 분들이 이 곳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규암의 외조카 윤동주, 문 목사의 형 문익환, 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의 설립자 김재준, 향린교회 안병무, 경동교회 강원용 등 기라성 같은 개신교 인물을 낳은 땅이었던 것이다. 캐나다 장로회[* 한신대학교의 설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의 도움을 받아 김약연은 북간도 용정의 '''은진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은진중학교는 용정의 민족 학교'''였다. 은진중학교는 만주의 독립운동가인 김약연과 이동휘 등이 캐나다 선교회에 요청하여 설립된 학교로서, 용정의 동산(東山) 일대의 1만평 부지에 600평의 본관과 150평의 기숙사, 400평의 대강당을 갖추고, 본관은 3층 벽돌건물에 스팀보일러로 난방을 할 정도로 교육시설이 다른 학교에 비해서 월등히 선진적이었다. 또한 은진중학교는 캐나다 선교회가 선교부 구역 내에 설립한 학교여서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덕분에 일제의 간섭을 받지 않고 민족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다. 김약연이 설립한 은진중학교는 한신대 설립자인 김재준이 교사로 있었다. 은진중학교 제자인 문익환, 강원용을 품은 한신대의 진보,민주성은 이렇게 연결된다. '''명동학교(김약연) → 은진중학교(김재준) → 한신대학교(문익환, 강원용, 안병무)'''. 김재준의 지도력은 북간도 1930년대 용정의 은진중학교를 시작으로 한국신학대학(1940년 설립 조선신학교 후신)과 경동교회, 기독교장로회 등을 통해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 민주화, 인권운동, 통일운동 등 분야별 걸출한 활동가들을 배출해냈다. 고지수가 한국 현대사를 바꾼 개신교 사회참여운동의 리더로 꼽은 [[김재준]]의 대표적 문하들은 [[문익환]], [[문동환(정치인)|문동환]], 안병무, [[강원용]], [[장준하]], [[이우정(1923)|이우정]], 이해영, [[김관석]], 김윤옥, 이영민, 이상철, 이해동, [[김상근]] 등이다. 여기에 직접 배우진 않았으나 1965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계기로 사회참여 문제에서 김재준의 뜻을 따랐던 서울제일교회 [[박형규(목사)|박형규]], 한국전쟁기에 김재준이 조선신학교 교수로 채용한 뒤 사회참여적 신학자로 변화해 간 민중신학자 서남동도 들어간다. 이들을 빼고 1960-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을 얘기하긴 어렵다. '''규암 김약연 목사의 증손자인 김재홍 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이 ‘김약연 목사 생가’를 한신대에 기증한다.''' * [[함석헌]]: 한신대학교는 함석헌 사상 형성과 실천에 도움을 주었고, 또한 영향을 받았다. 2018년도에 '씨알사상연구원'에서 <함석헌과 그의 도반들>이란 정기 강연을 한 바, 7인의 도반 중 4명이 한신대의 사람들이었다. 7명은 그의 스승인 [[류영모]], [[우치무라 간조]], 김교신, [[장준하]], [[김재준]], [[문익환]], [[안병무(1922)|안병무]]였다. 한신대에서 발전한 민중신학의 성찰과 씨알사상의 깊이와 폭은 류영모와 그의 제자인 함석헌에서 맥을 같이하고 한신대 학자들인 안병무, 서남동 교수 등이 체계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함석헌은 한신대 출신인 [[장준하]]와 [[문익환]], 이들 스승인 [[김재준]]과 함께 박정희 독재 정권에 대항하며 민주화 운동을 같이 한 동지이기도 하다. (함석헌 집과 문익환 집이 수유리 한신대학교 근처여서 자주 함께 했다고 한다. [[고은(시인)|고은]], [[문익환]], [[김동길]], [[장준하]], [[함석헌]], [[김대중]], [[강원용]] 등이 결집하는 민주의 성지가 수유리 한신대였던 것이다.) 함석헌은 한신대에서 출강하며 민중신학과 씨알사상을 전해주었고, 그의 강의를 듣고자 많은 대학생들과 진보 지식인들이 한신대에 모여들었다. 함석헌 사상의 최고 권위자인 씨알사상연구회장 [[박재순]] 교수도 그 중 한사람이다. 그는 함석헌 사상을 공부하러 서울대 철학과 졸업 후 다시 한신대에 입학하였다. [[박재순]] 교수 외에도 [[김경재]] 명예교수와 [[김진]] 씨알 평화 상임이사와 같은 씨알사상 연구가들이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