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양대학교/서울캠퍼스 (문단 편집) === 풍수지리 === [[http://www.hanyang.ac.kr/surl/0vPq|한양대학교는 서울 시내 대학들 중 풍수지리적으로 최고의 입지에 위치해 있다]]. 왕십리가 조선의 도읍지가 되었다고 가정하면[* [[무학대사]]가 왕십리에 도읍을 세우려다 10리를 더 갔다는 이야기 자체는 사실이다.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의 뜻을 생각해 보자.], 풍수지리로 볼 때 내산(뒷산)이 되는 행당산 위에 위치해 있는지라, 한양대에서 제일 높은 인문대 옥상[* 엄밀히 말해 백남학술정보관(중앙도서관)이 제일 높지만, 옥상에 갈 수 없다.]에서 보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용마산]]), [[관악산]], [[청계산]], [[남산(서울)|남산]] 등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산들이 병풍처럼 서울을 감싸고 있는 모습과 [[청계천]], [[중랑천]][* 이 일대가 청계천이 중랑천에 합류하는 곳이다.] 그리고 [[한강]]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풍수지리적 위치로 인해, [[무학대사]]는 [[궁궐]]을 현 한양대 부지에 지으려고 했다.[* 10리를 더 가지 않았더라면 [[경복궁]]은 이곳에 세워졌을 것이고, [[북악산]]은 행당산이 되었을 것이며, 서울의 중심지는 지금의 [[종로구]] 일대가 아닌 [[성동구]]였을 것이다.]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 위치한 만큼 주경, 야경 모두 정말 멋있다. 현재 백남학술정보관(속칭 중도)이 위치한 자리는 조선시대 마조단이 위치한 자리였으며 마조신은 조선시대에 전쟁의 신이자 군마의 신이었으며 종묘와 사직단 다음으로 중요한 장소였다. 이는 이 일대가 대규모 목장이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군마 등을 양성하는 곳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는 백남학술정보관 근처에 마조단이 있었다는 흔적과 작은 비석이 남아있다. 한양대학교 서울은 주변의 너른 평지 한 복판에 우뚝 서있는 돌 산위에 조성돼 있다보니 양기(陽氣)가 굉장히 강해 남학생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돌 산 가장 높은 곳에 시계탑이 딱 하니 박혀 있으니... 아시다시피 시계탑은 제주도의 돌하르방처럼 양기를 불러모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그 양기를 억누르고자 사범대 앞에는 여성의 성기 모양을 한 조형물을 배치해 기를 맞추려 했다는 [[카더라|썰]]이 있다.(사범대 H모 교수님 증언) 또 한나라 한(漢)자와 볕 양(陽)자도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보면 양기에 해당하는 글자이고, 성명학에서도 여성의 이름에는 거의 쓰지 않는 글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