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족 (문단 편집) == 혈통 == 한족은 오랫동안 중국이라는 [[역사]] 공동체 속에서 수많은 [[종족]]들을 흡수하면서 만들어진 민족이다. 실제로 중국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대학 생명과학학원 셰샤오둥(謝小東) 교수는 "순수한 혈통의 '한족'은 현재 없으며 [[DNA]] 조사 결과 현대 중국인은 다양한 민족의 특질이 고루 합쳐진 것으로 어떤 특정 민족의 특질이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2637790|"중국에 한족은 없다"]]] 이런 연구 결과는 일부 소장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들 소장 학자는 중국의 역사는 황허 유역 한족 세력이 남방을 침략하고 정복하는 역사였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남방의 토착민이 자신의 출신을 속이고 한족 행세를 하면서 이와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베이징의 한 역사학자는 “한족만이 중국 사회에서 정치적 파워를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토착민들이 자신들보다 우월한 중화문화권에 편입하기 위해 한족이라고 자처했다. 중앙 정부도 소수민족 복속 정책의 일환으로 그것을 묵인하고 장려해왔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들 ‘위장 한족’ 외에도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후손 가운데 절대 다수가 소수 민족으로 남기를 포기하고 사회생활에 유리한 한족을 선택한 것도 한족이 늘어난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옛날 얘기고, 중화인민공화국 당국에서 소수민족들에게 소수자 혜택으로 대학입시 가산점과 계획생육 면제 등의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한족과 소수민족이 결혼하면 소수민족을 선택하는 경우도 늘어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한족(아버지)-위구르족(어머니) 혼혈인 [[시린나이 가오]]. 한족은 이렇듯 장기적인 역사적 과정을 통해 ‘복합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한족은 ‘양이 마침내 질을 전화시키듯’, ‘인해 전술’로 표현되는 압도적인 인구의 힘으로써 거대한 문화적 동화력과 함께 중국이라는 국가를 수천 년 동안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지탱하고 강화시킨 확고한 물적 토대로 기능해왔던 것이다.[*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28605|한족의 나라에 ‘순종 한족’이 없다? 중국 인구의 91%라 했는데 DNA 검사에서도 존재하지 않아…“2천~3천년 전 한 시기의 지역적 구분” 주장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htm_2004090818291440004300-001.gif]]}}} || || '''난링·우이산맥을 경계로 나눠지는 한족의 혈통 구성 모습''' [[https://news.joins.com/article/387337|출처]] || 또 지금까지 한족 사이의 혈통이 남부 [[양쯔강]](揚子江)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는 속설이 내려왔으나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북 간 한족 차이는 푸젠(福建)성 우이산(武夷山)과 후난(湖南), 광둥(廣東)을 가르는 난링(南嶺)산맥을 기점으로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http://news.joins.com/article/387337|"중국 한족, 단일 혈통 아니다" 난링·우이산맥 경계로 남북 차이 뚜렷]]] 실제로 중국 대륙의 역사적인 대도시는 전부 난링·우이 산맥 '''이북'''에 있었다. 양쯔강(장강) 이남에 자리잡았던 세력도 난링·우이 산맥 이북을 근거지로 삼았다. 즉, 원래 이남 지역은 중국 대륙 역사에서 존재감이 크게 떨어지는 곳이었다. 다만 난링·우이 산맥 이남에 거주하는 [[객가인]]은 북방 한족의 일파로서 전쟁 등으로 인해 [[중원]]에서 남쪽으로 피난 간 이들의 후손이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북방 한족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 '''전 세계에 존재하는 42개 인구 집단 간의 유전적 거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enetic distance.png|width=100%]]}}} || || 여러 민족의 대분류와 유전적 거리를 알 수 있다.[* 참고로 왜 'South Chinese'가 [[동남아시아인]]으로 분류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데, 'South Chinese'에는 [[징족]], [[태족]], [[묘족]] 등 중국 최남부에 거주하는 여러 [[소수민족]]도 포함되고, 북중국과 남중국으로 나눈다고 중국 대륙을 딱 절반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유전학계에서 남방 한족이 있다고 보는 지역은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으로, 중국 대륙 기준으로 매우 일부분이다. (혹은 중국과 [[인도차이나 반도]] 국경 근처의 소수민족 거주지까지 포함할 수도 있다.) 사실 이마저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인원이 너무 많아서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의 역사적인 대도시는 전부 난링·우이 산맥 '''이북'''에 있다. 다만 난링·우이 산맥 이남에 거주하는 [[객가인]]은 북방 한족의 일파로서 전쟁 등으로 인해 [[중원]]에서 남쪽으로 피난 간 이들의 후손이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북방 한족에 가깝다고 한다.[[https://pubmed.ncbi.nlm.nih.gov/14577381/|#]]] || || '''아시아에 존재하는 39개 인구 집단 간의 유전적 거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enetic_tree_of_39_Asian_populations.png|width=100%]]}}} || || 북중국인은 한국인, 일본인, 티베트인과 유전적 거리가 가깝다. || 북경과기보(北京科技報)는 중국과학원의 발육생물학연구소 위안이다(袁義達) 연구원의 저서 '중국 성씨:집단 유전과 인구 분포(中國姓氏:群體遺傳和人口分布)'를 소개하면서 "중국 남부와 북부 한족 사이에는 유전자 구조상 차이가 존재함이 밝혀졌다. 이 차이는 남북 한족과 인근 소수민족 간의 차이보다도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생물 유전자학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중국의 한족은 단지 문화적인 공동체일 뿐 혈연적인 연대는 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또한 북방 한족은 주변의 [[흉노|흉노(匈奴)]]와 [[선비족|선비(鮮卑)]], [[돌궐|돌궐(突厥)]] 및 [[몽골인|몽골족]]과 혈연적으로 합쳐졌으며 남방의 한족들은 원래 그 지역에 거주해 왔던 [[남월|남월(南越)]]과 [[베트남/역사#s-4.1|교지(交趾)]] 등의 민족[* 2004년 당시 중국측 기사에서는 '南蒙古人种'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를 번역한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남(南)몽골족'이라 번역하였으나, 기자가 임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창작 용어인 듯하다. 직역하면 '남몽고인종'인데, 이는 학계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들과 피가 섞인 것으로 나타났다.[* [[http://news.joins.com/article/387337|"중국 한족, 단일 혈통 아니다" 난링·우이산맥 경계로 남북 차이 뚜렷]]] 다만 한족은 그저 합쳐진 종족의 수가 다른 민족보다 많을 뿐, 이렇게 다종족이 융합되어 하나의 민족이 되는 현상은 보편적인 것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민족들만 해도, 선사 시대부터 여러 종족의 혼합으로 형성되어 각각 "영국인"[* 원주민인 이베리아인들과 이주민인 켈트족, 나중에 쳐들어온, 게르만계 [[앵글로색슨]]인, 그보다 조금 더 늦게 온 데인([[덴마크]])인.], "프랑스인"[* 원주민 켈트계 외에 로마로부터 온 라틴인, 그리고 고대 말기에 진출한 게르만인([[프랑크]]족), 이외에도 영국에서 밀려난 영국 켈트족 [[브리튼인]] 등등.. 언어에 있어서 프랑스어는 같은 라틴계 언어임에도 남부에서 쓰이는 오크어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공교육 시행 이전에 원할한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었고, 이외에도 브르타뉴 반도에서 쓰이는 [[브르타뉴어]]와 남부 국경지역에서 [[카탈루냐어]], [[바스크어]], 동부 국경지역에서 알자스어와 플랑드르어 등이 토착어로 쓰이고 있다.], "독일인"[* 게르만계의 알레만니, 체루스키, 작센 등이 섞였고 독일민족의 상당수는 게르만계뿐만 아니라 슬라브인들이나 발트족들도 섞여있다. 독일 통일을 이끈 [[프로이센]] 자체가 [[튜튼 기사단]]이 발트족들의 땅을 점령하면서 해당지역에 살고있던 발트인들과 슬라브인들을 정복-동화, 혼혈시켜 만든 나라이다.]이라는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qvTDkZn.png|width=100%]]}}} || || 서기 2년경의 [[한나라]] 인구 밀도 지도. [[한서]](漢書)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황하 유역의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https://www.reddit.com/r/MapPorn/comments/5dacht/population_of_the_han_empire_2_ad_1911_x_1978_oc/|#]] || 한족은 그 분포 범위가 넓은 만큼 지역별로 유전적 차이를 어느 정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중원]] 지역을 포함한 [[화북]], [[화동]], [[화중]] 지역의 한족은 [[몽골인]], [[만주족]] 등과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하고, 이들이 중국 한족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과거 [[한나라]] 시절 화북의 인구 밀도가 압도적이었던 점과 더불어, 현대 중국에도 경제적인 이유와 교통의 발전이 있음에도 화북의 인구 밀도가 여전히 가장 높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다만 화북 같은 지역 구분이 항상 일정하게 정해진 부분은 아니다. 그래도 거의 예외 없이 포함되는 지역은 있기 마련이고, 예를 들어 황하 유역은 항상 화북에 포함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