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족 (문단 편집) == 여담 == * 한족 중에는 자연적으로 새끼발톱이 갈라지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속설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Accessory_nail_of_the_fifth_toe|Accessory nail of the fifth toe]] 이를 일명 '며느리 발톱'이라고 하는데, 아직 의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당연히 한족에게만 생기는 건 아니고, 다른 민족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작은 신발을 신으면 후천적으로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http://www.mkhealth.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329|#]] * 중국사 중 한족 왕조 시대에 한민족 국가를 침공한 예는 거의 없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엄밀히 따지면 과장은 아니다. [[한나라]]는 한족이라는 말의 어원이 될 만큼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한족 왕조다. 그리고 한나라는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침공했으므로 한족 왕조가 한민족 국가를 침공한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위(삼국시대)|위나라]]의 경우 [[공손연]] 정벌때 고구려와 협력하긴 했지만 이후 국경이 맞닿아 급격히 관계가 흐트러지고 나중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전쟁이 발발해 [[관구검]]에 의해 고구려의 전 국토가 피해를 입었다.[* 물론 선제공격은 고구려가 했으나 위나라가 공손연 토벌 이후 합의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고구려의 잘못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위나라는 통일 정권이 아니었으므로 논외. * 이후로는 드물긴 하다. 한민족 국가를 침공한 [[수나라]]와 [[당나라]]는 '통일 중원 제국'은 맞지만 왕조와 정권 핵심부가 모두 [[선비족]]인 탓에 '순수 한족 제국'이란 점에 대해서는 매우 애매하다.[* 수의 황족 양씨와 당의 황족 이씨는 모두 [[선비족]] 혈통이 있었다. 그래서 당대의 [[돌궐]]에서는 수, 당을 모두 선비족이라는 뜻의 타브가치(선비족의 [[탁발부]])라고 불렀다.] 물론 문벌귀족[* 서진의 황족이던 사마씨 같은 이들이 살아남았거나 아니면 그런 가문들을 계승했다고 우기는 세력들이 있었다.] 세력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이들 정권은 훗날 등장하는 [[요나라]], [[원나라]], [[금나라]], [[청나라]] 정권처럼 뚜렷하게 민족색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찌어찌 '한족 통일 제국'으로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문벌귀족들은 한반도 침공을 반대했고, 별 이득도 없는 전쟁을 강행한 건 엄연히 그 선비 혈통의 정권 핵심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매우 애매한 부분이다. * [[당나라]]가 쇠락한 이후 등장한 [[송나라]]는 300년 역사 동안 고려와 접경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고려를 침공한 [[요나라]]의 경우 엄연히 [[거란족]]의 나라였고 그 후에 [[원나라]]의 침공이 있긴 했지만 원나라 또한 엄연히 [[몽골 제국]]의 색채가 매우 강한 [[몽골족]]의 '정복 왕조'였으며 무엇보다 요나라와 몽골의 침입 당시에는 중원에 송나라가 아직 생존한 상태였었다. [[명나라]]는 고려 및 조선과 접경하긴 했지만 [[오이라트]]나 [[북원]], [[여진족]]의 동향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큰 갈등은 없었던 고려나 조선에 무력으로 침공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명나라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병들을 보내주기까지 했었다. [[청나라]]의 경우에도 조선을 침공하기는 했지만 엄연히 [[산해관]] 입성 전의 침공이었으며 청나라는 엄연히 [[만주족]]들의 나라였었고 무엇보다 청나라의 침공 당시에 중원에는 명나라가 아직 생존한 상태였었다. *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시 [[일본 제국]]에 맞서 같이 항일 운동을 전개하던 사이였기에 '혈맹'으로까지 불릴 정도였고 현재까지도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대만에 친근하다.(특히 장제스가 [[윤봉길]]의 성과에 매우 감명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물론 [[장제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은 전후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유였다고 봐야겠지만, 결국 한국 독립운동은 지원한 큰 축이 장제스의 중화민국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국공내전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대륙을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후 6.25 전쟁에서 북한을 지원하여 한국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 따라서 '한족 정권일 때는 한민족 국가를 침공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주장은 한족과 한민족이 서로 접하게된 2000년이 넘는 역사에서 한과 위, 중화인민공화국 단 세 차례 밖에 없었으므로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나마 중화인민공화국은 한쪽 한민족 국가와의 우호를 바탕으로 다른 한민족 국가를 적대한 것. 반대로 송나라, 명나라, 중화민국처럼 서로 동맹에 가까운 적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족 정권이든 북방 유목민들이든 외부 세력들이 쳐들어 올 때마다 한반도가 크게 굴곡진 운명을 겪어야 했다는 점은 서로 동일하다. * ''[[한반도]] = [[한민족]]의 [[땅]]"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고려]]시대 이후로는 그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다시피 한 한민족의 역사와는 달리, "[[중국]] = 한족의 [[땅]]"이라기엔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 한적이 명확하게 현대 중국 영토를 장악한 것은 여진족, 즉 청나라 이후의 중화민국부터이기에 얼마 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나 간쑤성, 내몽골, 티베트, 만주 일대는 [[청나라]] 때 편입된 영토이다. * 흔히 [[중원]]이라 불리는, [[만리장성]] 이남의 경우 역시 오래 살긴 했으나, 지배를 했다기엔 모호한 감이 있다. 한족이 형성된 한나라 건국 기원전 200년대 이후만 쳐도 한나라(약 400년), 삼국지 시절과 이후의 위~서진(약 100년), 송나라(약 300년), 명나라(약 300년), 중화민국(약 30년)[* 중화민국의 경우 대만으로 퇴각한 현재까지 합치면 약 100여 년이다.], 중화인민공화국(약 70년)으로 절반이 약간 넘는 약 1100년 언저리다. 그 외에는 오호십육국, 송/요 또는 송/금 등 이민족과 땅을 나누어 가진 기간도 있고, '비한족 통일 정권'도 만만찮은 기간을 갖고가 수(약 30년)[* 지배정권인 양씨가문이 [[탁발부]]선비족 혈통이었다.], 당(약 300년), 원(약 100년), 청(약 300년)으로 그에 버금가는 무려 730년이나 중원을 지배했었다.[* 물론 수, 당은 한족화된 [[선비족]] 왕조이므로 혼합 왕조 시기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순수한 한족의 지배기라고 보기도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