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타바이러스 (문단 편집) == 세균전 무기? == [[파일:Geographic-distribution-of-SEOV-infections-among-human-and-rats-France.png|350px]] 사실 한타바이러스 자체가 전세계에 퍼져 있어서 그렇지, 보고된 사례는 많았다. 그림은 최신이지만,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림은 2016~2017년 서울 바이러스 환자들을 나타낸 그림이다.], 광범위하게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때 사신으로 활약하였다. 참고로, 그림의 바이러스는 전세계에서 발견되는 [[시궁쥐]]에서 사는 서울 바이러스(SEOV)이다. 1차 세계 대전 기록 중에는 한타바이러스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지만 별 주목을 못 받았다. [[6.25 전쟁]]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유엔군사령부|UN군]] 장병 약 3200여명이 감염되었으며, 이중 수백 명이 사망하였다.([[https://health.kdca.go.kr/healthinfo/biz/health/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View.do?cntnts_sn=5279|질병관리본부 자료]])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망자수는 밝혀지지 않았다. 중공군이 한강 이남을 못 넘어온 까닭의 하나가 '병영 안에 괴질이 돌아서'였는데, 한타바이러스가 그 괴질의 원인이었다. 당시 UN군·[[중국 인민지원군|중국군]]은 이것을 서로 상대가 만든 [[생물학 무기]]라고 생각했을 만큼 피해가 심각했다. 실제로 공산군측은 소련의 위성국가 및 중립국 학자들로 짠 민간조사단을 파견하여 이를 미군의 세균전으로 선전했으며, 미국은 이를 즉각 부인했다. "[[관동군]]의 악명 높은 [[731 부대]]가 이것을 엄청나게 연구했고, 이 부대의 지휘관인 [[이시이 시로]]가 미군에 무기화 방법을 넘기는 조건으로 [[전범재판]]에 기소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다만 그들이 이미 1940년대에 이 바이러스를 분리했다면 아래 항목에서 보듯 전후 일본에서 발병했을 때 몰랐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때쯤 최초 발견자로서 자신을 알려 명예를 얻으려 했을 것이다. 어쨌든 731부대 관계자들이 한국전쟁 기간 중 비밀리에 한국에 오기도 했다.[* 니덤 보고서에서 의하면 [[이시이 시로]]도 [[6.25 전쟁]] 당시 한국에 두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731부대 핵심 인물들은 전후 자신들이 자행한 인체실험 자료를 미국에 넘기고 면죄부를 받아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미군은 이들이 일단은 극동에서 세균무기를 직접 개발 생산한 집단이니 이 문제를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이들은 미군정이 고용해 미군장병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이것을 연구하러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