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푸쥐 (문단 편집) === [[반장전쟁]] === 1929년 [[편견회의]]에 불만을 품은 군사참의원 장 겸 우한정치분회 주석 [[리쭝런]]이 호남성 정부주석 [[루디핑]]을 무단 해임시키는 [[호남 사건]]을 일으켜 1929년 3월에 [[계계군벌]]과 장제스 사이의 [[1차 장계전쟁]]이 발발했다. 장제스는 한푸쥐를 3로군 사령관에 임명하여 우한을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군비 문제와 산동성 지배 문제를 놓고 장제스와 관계가 악화된 펑위샹의 지시로 1929년 4월에 [[스여우싼]], [[마훙쿠이]] 등과 함께 하남성에 주둔, 카이펑과 정저우에서 장제스에 맞서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에 장제스는 한푸쥐 등을 포섭하기 위해 접촉을 시작했는데 펑위샹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한푸쥐를 섬서성으로 이동시켰다. 5월 15일 쑨렌중과 함께 펑위샹을 호당구국군 섬서로군 총사령관에 추대하였고 [[1차 장풍전쟁]]에 참여했으나 장제스가 그를 하남성 정부 주석에 임명하자 5월 21일 뤄양에서 장제스 옹호 통전을 보내 펑위샹 진영에서 이탈했다. 이후 토역군 13로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펑위샹 부대와 맞섰다. 1930년 [[중원대전]]이 발발하자 진포철로에 배치되어 산동성 방어를 맡았으나 [[푸쭤이]]의 공격에 패배하여 칭다오로 패주했다. 하지만 [[장쉐량]]이 중앙옹호를 통전하고 관내로 진출하면서 옌시산의 베이핑 국민정부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옌시산과 펑위샹 모두 하야를 통전하고 옌시산은 일본이 지배하는 다롄으로 망명했으나 펑위샹도 산동성 태산에 은거해야 했다. 이후 유진년, 스여우싼과 함께 산동성의 대권을 놓고 경쟁하였으나 한푸쥐는 편을 잘 선택한 덕에 1930년 9월 산동성 정부주석에 임명되어 향후 7년 간 산동성을 지배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