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필관계 (문단 편집) == 역사 == [[백제]]가 흑치국과 교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흑치국이 지금의 필리핀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이에 대한 반박 및 반론도 있다.] 이후 근대시대, [[조선]]과 필리핀은 피상적으로 그 존재를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 필리핀은 중국발음을 음차한 여송(呂宋 [[루손 섬]])이라 표기되어있으며 [[순조]]시기 여송인들이 조선에 난파한 적이 있다. 말도 안통하고 그들이 단지 막가외([[마카오]])로 보내달라고 해서 무슨 말인지 몰라 하다가, 어부 [[문순득]]이 류큐와 필리핀까지 난파했다가 돌아온 적이 있는데 그를 통해 대화한 적이 있다. 18세기 문순득 외에도 다른 조선시대 표류민들도 대만 원주민들을 봤다는 언급이 있다. [[https://m.earticle.net/Article/A393677|#]] 현대에 필리핀과 대한민국은 [[1949년]]에 처음 외교관계를 맺었다. 이듬해인 [[1950년]] 6월 [[6.25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필리핀군은 [[유엔군사령부|유엔군]]으로 참전했으며, 휴전 후인 [[1954년]] 양국의 상주공관이 설치되었다. 또한 대한민국과 필리핀은 남베트남을 도와 [[베트남 전쟁]]에 함께 참전했다. 더불어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은 [[팔라우]]를 겸임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 대한민국보다 잘 살고 국력도 강한 나라였다. 당시 동양 최대의 돔 경기장인 Araneta Coliseum(돔 직경 108m)를 지을 정도의 경험과 기술이 있던 나라였다. 참고로 필리핀에 관계된 한국의 건물 중 하나로서 일부 사람들이 [[1960년대]] 필리핀이 지어줬다는 소문을 근거로 [[장충체육관]]을 드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은 설계, 시공을 한국이 맡았다. [[https://www.kaah.or.kr/board/board_view.jsp?ncode=a003&num=94|#]] 또한 [[장충체육관]]이 아닌, 미국 대사관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쌍둥이 건물을 필리핀측이 설계, 시공했다고 아는 이들도 있으나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미국대사관 건물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쌍둥이 건물 모두 미국의 태평양 건축 엔지니어(PA&E)와 빈넬(Vinnel)사가 주체가 되어 지은 것이며,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은 당시 빈넬사 주임 기사였던 [[이용재#대한민국의 건축가]](李龍在·1897~1974)이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45767.html|#1]]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18/2009121801142.html|#]] [[http://www.chpri.org/board/content.asp?bCode=8725|#]] 당시 [[박정희]]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게 "필리핀만큼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건 유명한 일화로, 실제로 필리핀은 [[미서전쟁]]에서 독립한 후 미국 필리핀 전쟁으로 식민화되었지만 이후 경제발전이 이뤄지면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립 시기만 해도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성공한 국가였다. [[라몬 막사이사이]] 같은 훌륭한 지도자도 있었다. 하지만 마르코스의 오랜 통치와 함께 한국과 필리핀의 위상은 급변했다.[* 마르코스는 표면적으론 필리핀의 경제를 살리는 듯 했으나 내부에선 극심한 빈부격차, 부패 문제가 심했고 이로 인해 임기 말기에 가선 불황이 일어나고 결국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져 실각한다. 반면 박정희의 경우 경제를 개발시켰고 이 과정에서 빈부격차나 부패 문제는 나왔으나 마르코스 시기 필리핀급은 아니었다. 후대의 평가로는 둘 다 독재자이나 박정희는 최소한 경제라도 개발 시킨 업적이 있지만 마르코스는 그 조차도 애매하다.] 그러나 실제로 박정희가 저런 발언을 했는가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위 일화는 당시 필리핀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예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마르코스의 독재 말년인 [[1980년대]]에 필리핀과 한국은 모두 '피플 파워'로 일컬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결실을 이뤄낸다. 필리핀은 [[1986년]] 마르코스 정권을 무너트렸으며, 한국은 다음해 [[6월 항쟁]]으로 [[대한민국 제5공화국]]의 항복을 받아냈다. [[가톨릭]]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 [[김대중]]이 내세운 [[평화민주당]]의 노란색도 필리핀 피플파워에서 불려왔으며, 코라손 아키노(베니그노 아키노의 아내)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 후 국빈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