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화생명 (문단 편집) == 역사 == || [[파일:대한생명 로고(1990-1999).svg|width=300]] || || [[신동아그룹]] 계열사 시절 로고[* 1990년 1월부터 사용된 로고. 1959년부터 1989년까진 동그라미에 화살촉 모양이 들어간 로고를 썼으며 구 [[극동그룹]] 로고와 비슷했다. 1999년부터 2007년 한화 신 CI 제정 전까지 심볼 CI를 뺐다.] || || [[파일:대한생명 로고.svg|width=300]] || || 2007년 한화그룹 신CI 적용 후 로고 || || [[파일:한화생명 로고.svg|width=300]] || || 현 로고 || 일제강점기 당시 19개 보험사가 있었으나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철수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생명 평양지부장이었던 임창호 씨가 생명보험조선인중앙자치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나아가 당시 만석꾼이었던 강익하 씨와 함께 [[1946년]] [[9월]]에 '대한생명'을 설립하였다. 사명인 대한생명에서 '대한'의 유래는 '대한'독립만세에서 따왔다. 약칭은 '대생'이었다. 초창기에는 근로단체보험 위주로 상품을 판매했다가 곧이어 개인보험 및 최초의 교육보험을 출시하였다. 1962년에 삼척탄좌[* 1970년에 [[삼천리그룹]]으로 인수됨. 현 삼탄.] 및 대한프라스틱을 세우고 자금까지 대주며 사세확장을 했으나, [[1969년]]에 대한프라스틱 경영이 어려워지자 본사도 자금난으로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 결국 [[신동아그룹]]이 대한프라스틱공업과 세트로 경영권을 인수해 1960년 남대문 신사옥으로 옮겼고, 1968년 일본 협영생명과 재보험 및 재재보험 협약을 체결했다. 1975년 총자산 1조원을 돌파하였다. 이 기세를 몰아 1981년 1월 첫 지역총국인 영남총국 개국 후 4월 전국 온라인터미널망을 개통했고, 8월에는 미국 링컨 내셔널 사와 암보험 재보험 협약을 맺었다. 1985년 [[63빌딩]] 완공 후 이전해 1986년 4월 서울 및 강원총국을 개국했다. 1987년 2월 스위스 라이프 네트워크 가입으로 다국적 단체보험시장 진출 후 8월 PC 영업소 지원시스템 'Dli-Fss'를 개통했다. 1988년 3월 업계 최초로 계약자 이익배당제를 실시한 뒤 8월 영문표기를 'Daehan Life Inc.'에서 'Korea Life Inc.'로 변경하고 서울올림픽 때 63빌딩에서 올림픽 성화대를 점화하고 1990년 3월 아시아 최대 컴퓨터 'IBM Super' 가동 후 1995년 화상회의 시스템을 개통했다. 1996년부터 ARS 서비스를 개시했다. 위와 같은 공적을 뒤로한 채 모기업 [[신동아그룹]]은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공중분해됐고, 그해 8월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어 [[예금보험공사]] 공적자금 투입 후 국영기업으로 전환되어 12월 부실기관 두원생명, 2001년 [[현대생명]][* [[푸본현대생명]]의 옛 이름인 현대라이프와는 전혀 다른 보험회사로 이 쪽은 [[현대그룹]] 계열 보험회사다.] 및 [[삼신올스테이트생명]] 계약을 각각 P&A 방식으로 인수했다. 2002년 신동아화재와 세트로 한화그룹에 인수된 후 2005년에 텔레마케팅 및 보험심사업무를 '대한티엠에스'와 '대생손해사정'으로 각각 분사시켰다. 2010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한화그룹]] 계열에 편입되어 있어 [[한화그룹]]과 사측에서는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하는 것을 추진했으나, 일선에서 보험 영업하는 FP(보험설계사)들이 '한화' 브랜드 네임이 '대한생명'에 비해 너무 현격히 떨어져서 영업 못한다고 반대했었고[* [[삼성생명]]도 1989년 사명 변경 당시 설계사들의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정책의 일환으로 사명 변경을 강하게 추진했고, 결국 간판을 갈았다.] [[예금보험공사]]도 비슷한 이유로 반대했었다. 하지만 2012년이 되자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한지 1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또 [[한화그룹]] 창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6월 29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명변경을 결의하였고, 사명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한건 기업 이미지로도 사실상 신의 한수로도 꼽히고 있다.[* 과거 삼성생명도 '삼성' 이름을 붙히는 과정에서 무수한 반대가 쏟아져 나왔었으나 이건희 회장이 강하게 밀어 붙혀 현재의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2012년]] [[10월 9일]]부터 한화생명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2016년 1월엔 총자산 100조원을 돌파하며 국내 생명보험사 순위 2위에 올라왔다.[* 1위가 너무 독보적인것도 있지만 한화 내부에서도 1등에 대한 열망이 별로 없다. 이유는 [[김승연]] 회장이 초기 대한생명을 인수하던 시절 [[이건희]] 회장에게 찾아가 운영 노하우를 전수 받으며 '''형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잘 운영해보겠다.'''는 말을 남겼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16년 이후부터 2020년 현재, 삼성생명에 이은 2위 체제를 여유롭게 유지하고 있다. 라이프플러스(Lifeplus), 라이프엠디(Life MD), 언더라이팅 인공지능 도입 등 핀테크 및 신사업 투자부분은 금융업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선도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