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할복 (문단 편집) == 그 외 == 할복은 일본의 ~~고통스럽고~~ 영예로운 자결법이었지만 물론 예외인 사례도 있어서 [[임진왜란]]의 선봉장이기도 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가톨릭]] 신자였던 탓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후 할복 자살을 종용받았으나 하지 않았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금기로 하기 때문. 그 때문에 [[조리돌림]]을 당해 갖은 모욕을 당한 후에 참수형으로 죽었다.[* 죽을 때 [[불교]]식대로 [[승려]]가 고니시의 머리 위에 [[불경]]을 놓고 [[경]]을 읊었는데 고니시는 "허튼 짓 하지 말아라, 나는 키리시탄([[크리스천]])이다"라며 경을 냅다 팽개치고 "[[예수]], [[성모 마리아|마리아]]"를 부르며 참수당했다.] 황당한 할복 시도 사례가 있는데, 1688년에 [[이세]] 나가시마번[* 현재의 [[미에현]] [[쿠와나시]] [[나가시마]]초] 2대 [[번주]] 마츠다이라 타다미츠의 장남인 마츠다이라 타다아키가 성 안에서 '''[[몽유병|졸다가 잠결에 자신의 배를 칼로 찌르는(!!)]]''' 초유의 ~~몽유할복~~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으나 타다아키는 이 소동으로 차기 번주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 소동으로 ~~족보가 파여~~ 폐적되었다는 설도 있고, 스스로 후계자의 자리를 고사했다는 설도 있다.] 다만 이 할복 아닌 할복 소동이 벌어진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는데, 당시 타다아키는 부친인 타다미츠와 사이가 상당히 험악했다고 한다. [[문무겸비|문무양도를 겸비한]] 타다아키와는 대조적으로 아버지 타다미츠는 [[암군|어리석은 인물]]이었고, 사소한 이유로 가신 3명을 추방하는 등 [[공포정치]]를 일삼았다. 이런 탓에 타다아키가 점점 부친에게 불만을 품게 되면서 부자 사이에는 도저히 수습하기 힘든 감정의 골이 패여 버렸고 그 와중에 타다아키의 '졸음할복' 소동이 벌어진 것. 당시 타다아키가 졸고 있었던 이유를 부친과의 관계 악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