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경도 (문단 편집) === 근현대 === 하지만 [[조선시대]] 때 차별 당한 [[북한]] 지역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개화기, [[일제강점기]]에 더 적극적이었다. 당시 [[북한]] 지역이 지리적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영·정조 때부터 조정은 전국적인 정치적 지역 차별을 없애는데 관심이 있었고, 구한말부터 조정에서는 오늘날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운 [[이용익]]과 같은 인사를 총애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백두산]]이 중시되는 등의 움직임이 있자 아예 함경도민은 자신들은 '조선의 뿌리'라고 여기고자 하는 경우가 있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34792|#]] [[윤동주]] 같은 인물은 뿌리가 함경도라는 이유로 자신을 '조선 사람'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함경도 주민들에게 이민족의 후손이라는 의심을 받던 [[재가승]]이라는 함경북도 최북단의 집단도 갑오개혁 때 이미 차별이 없어졌다는 언급이 있다. [[http://dbs.donga.com/comm/view.php?r_id=03911&r_serial=02|#]] [[김구]]는 1895년에 북청군을 들르면서 '문화향'이라고 칭했을 정도다.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170208010002545|#]] 심지어 농사조차 단천 같은 남쪽에 있는 지역에서도 토질이 적합하지 않은 곳은 쌀농사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지만, 조, 수수, 감자, 피 등을 재배하여 유복하게 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http://m.kyeongin.com/view.php?key=20171113010003977|#]] 개화기 당시 이곳에서는 주로 '자강 운동'이 벌어졌고 근대식 교육 및 산업의 발전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원산시|원산]], [[흥남시|흥남]], [[청진시|청진]]의 발전이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무산군]]의 철광과 [[장진호]], [[부전호]] 수력발전소 등이 이때 만들어졌다. 덕분에 이 당시 함경도를 포함한 [[북한]] 지역은 '동양의 [[덴마크]]'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생활 수준이 남부 지방보다 높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일제의 한반도 병참기지화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의미할 뿐 식민지 피지배민들의 [[식민지 근대화론|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함경도민의 강한 자립심은 '[[북청]] 물장수'라는 말로도 알려져 있다. 아직 [[서울]] 시내에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시절에는 일일이 물동이를 지고 떠서 날라야 했는데,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이 대개 북청 출신이라는 점에 기인했다. [[광복절|광복]] 전의 기행문에 묘사된 바로는 함경도 일대의 장터는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장마당 상인들 중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한다고 한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861151|#]] 다만 이건 과거와 무관하게 북한 당국이 남성에 대해 각종 정치적 제약으로 장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런 현상이 딱히 없던 황해도나 북한령 강원도를 포함한 북한 전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파일:external/mlbpark.donga.com/1290594672.jpg]] 평균 신장 역시 [[1930년대]]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준(함남 166.2cm, 함북 166.8cm)이었다. 김연옥의 "기후학개론"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는 가장 큰 [[허베이성]]이 165.9cm, 가장 작은 후난성이 159.5cm, 2번째 단신 광동성이 159.7cm , 몽골계 [[할하인]] 및 [[부랴트인]]는 각각 165.4cm 와 164cm, 퉁구스계 [[만주족]], [[오르촌족]], [[다우르족]]은 각각 164.2cm , 160.8cm , 162.6cm이었으며 한국은 평균 162~4cm, [[일본]]은 가장 큰 지역이 161.3cm(간사이)이었다. 당시 한국 최단은 161.7cm의 [[충청남도]]와 [[전라북도]].[[http://web.kma.go.kr/communication/encyclopedia/list.jsp;jsessionid=Ca87e1maHMP8Nc58pOOOJGhy210BIOLzSXVIR4xBwuP0mfPMHusc6H4qhh1Fma0r?schType=&schText=&schGroup=&schLang=&encyc_id=1174900&page=141|그 당시 한국의 지역별 평균신장 링크]] [[프로레슬러]] [[역도산]](김신락)도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이다. 태어난 곳이 함경도인 배우 [[주현]]도 174cm으로 160cm 중반이 많은 그 나이대 남성에 비하면 꽤 크다. 80년이 흐른 남한의 남성 평균 신장이 174cm, 일본의 남성 평균 신장이 170.7cm, 중국 화북, 만주 일대의 남성 평균 신장이 173~174cm임을 감안(동북 지방은 한국인과 비슷하지만 남부지방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평균키와 비슷하며, 전체적인 평균키는 일본과 비슷하거나 미세하게 작다). 북한이 의식주로 제대로 해결 못하는 극단적으로 가난한 나라만 아니였다면(1990년대의 남한 수준만 되었더라도) 북한 남성의 평균 신장은 못해도 174cm는 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평균 162cm 전후로 집계된 한반도의 남부 지역이 경제성장으로 현재 평균키가 173~4cm이 되었으니 단순 계산으로만 따져도 주민들을 배부르게 먹일 경우 함경북도 지역의 평균키는 대략 '''177~8cm'''가량 될 수 있었다.[* 대략 [[영국]]과 비슷한 값이 나온다.] 물론 다 큰 건 아니고 아리랑으로 유명한 [[나운규]]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임에도 키가 작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삼팔선|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자 함경도 출신 군 장성들이 대거 월남하였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나름의 세력을 구축하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 및 군 수뇌부에 발생한 파벌싸움에서 '[[알래스카]] 토벌작전'에 의해 군복을 벗게 된다. 당시 '알래스카'가 군내에서 함경도 출신 인사를 가리키는 암호명이었다.[* 여담으로 평안도 출신 군 인사는 '텍사스', 전라도 출신 군 인사는 '하와이'라고 불렸다. 해방 직후에 미군 제24군단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한반도 8개 도 각각에 대한 작전명으로 붙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https://blog.naver.com/udamin/220545564834|#1]][[https://blog.naver.com/udamin/220545798156|#2]] 이들 '텍사스'나 '하와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평안도, 전라도 출신 군 인사들도 차례차례 숙청된다.] [[정일권]] 같이 함경도 파벌을 이루던 인사 중 박정희와 친한 인사는 그 파벌 싸움에서 살아남아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