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병선 (문단 편집) == 비판 == [[조병옥]], [[박진경(군인)|박진경]], [[송요찬]], [[탁성록]]과 더불어 '''[[제주 4.3 사건]] 당시 강경토벌과 [[민간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인물 중 한명'''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공적비와 마을 이름이 있다[* 실제로 제주시 [[봉개동]]의 옛 이름 함명리(咸明里)에 함병선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4.3 전에는 봉개리(奉蓋里)였는데 연대장 함병선의 성인 '함(咸)'과 작전과장 김명(金明)의 이름인 '명(明)'을 각각 따서 붙여 '함명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름이 붙여진 봉개리는 정작 함병선이 연대장으로 있던 시기인 1949년 1월 21일 수백여 명이 군경토벌대에 의해 학살당하고 마을이 전소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리고 4.3 진압 이후 다시 재건될 때 '함명리'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는 것 등을 들어 그가 학살과는 상관없다고 여기지만 그는 최소한 2연대가 9연대와 교대한 1949년 12월 말부터 [[유재흥]]이 부임하기 전인 1949년 2월까지의 초토화작전과 민간인 학살의 책임을 지고 있다. 당장 4.3 최대의 학살사건인 북촌리에서의 학살이 그가 부임하고 있던 시절(1949년 1월 12일)에 발생했었고, 미군 비밀문서조차 '''"함병선 연대장은 신분이나 무기 소지 여부를 가리지 않고 '폭도 지역'에서 발견된 모든 사람을 사살하는 가혹한 작전을 폈다"'''고 기록해놨다. 또한 그는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진압군으로 참여시켜 제2연대 제3대대의 경우에는 장병 전원이 서북청년회 출신일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