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부르크 (문단 편집) == 정치 == [include(틀:함부르크 주의회의 원내 구성)] 함부르크는 도시주이면서 항구인 특성 때문에 노동자 계층이 많고 전통적으로 가족단위의 사회민주당 지지층이 많아, 주의회에서 사회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장악할 수 있는 주 중 한 곳이다.[* 브레멘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마찬가지로 도시주인 베를린은 좌파당과 녹색당 지지율이 높아서 사민당 단독 집권은 가능성이 거의 없는 편이다.]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지 않더라도 원내 제1당으로서 연립여당의 시장직은 사회민주당이 차지한다. 전후 19차례의 주(州) 내각 중 사회민주당 단독 내각이 10차례, 연립내각이 5차례이다. 1987년 이전에 사회민주당이 과반수가 되지 못 한 경우가 단 한 차례, 여당이 되지 못한 경우가 단 한 차례일 정도. 다만 함부르크에서 녹색당이 확실하게 자리잡은 1987년 이후에는 녹색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고,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기독교민주연합이 여당이었다. 물론 그 마저도 올레 폰 보이스트 원맨 인기파워로 기독교민주연합이 여당이 된 것이고, 자세한 내용은 후술.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함부르크 역대 지방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 * 1946년 110석. 사회민주당이 83석으로 단독과반수 * 1949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65석으로 단독과반수 * 1953년 120석. 기독교민주연합과 자유민주당이 연합한 '함부르크 연대'가 62석으로 여당, 사회민주당은 58석 * 1957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69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61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72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66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74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70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70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74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56석으로 자유민주당과 연립내각 구성 * 1978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69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82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64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87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55석으로 녹색당과 연립내각 구성 * 1991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61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93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58석으로 녹색당과 연립내각 구성 * 1997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54석으로 녹색당과 연립내각 구성 * 2001년 121석. 기독교민주연합이 33석-Schill(기독교민주연합 탈당파)이 25석으로 자유민주당과 연립내각 구성, 사회민주당은 46석으로 원내 제1당 * 2004년 121석. 기독교민주연합이 63석으로 단독 과반수, 사회민주당은 41석(제2차세계대전 이후 역대 최소) * 2008년 121석. 기독교민주연합이 56석으로 녹색당과 연립내각 구성, 사회민주당은 45석 * 2011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62석으로 단독 과반수 * 2015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58석으로 녹색당과 연대 * 2020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54석이지만, 녹색당이 무려 18석을 늘렸다. 함부르크는 독일 성소수자 정치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있는 곳인데, 2001년부터 기독민주연합 소속으로 함부르크 시장을 역임한 올레 폰 보이스트(Ole von Beust)의 행적 때문이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있던 그는 2004년 재선에 도전할 때 정적인 쉴로부터 동성애자임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고,[* 같은 기민력 소속의 쉴은 함부르크 부시장이였는데, 상습적인 극단적 발언과 마약 스캔들로 인해 2003년 보이스트에게 경질당하였다.]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공개 기자회견에서 대중에게 커밍아웃하였다. 처음엔 보수주의 정치인으로서 보수적 유권자들에게서 지지를 잃어 재선에서 실패할 꺼란 우려 때문에 동성애자임을 숨겨왔던 거지만 오히려 커밍아웃 이후 솔직하고 용기있다라는 대중의 반응과 함께 지지율이 크게 오르며 함부르크 역사상 기민련 최초 단독 과반의석 승리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후 보이스트는 2008년 3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2010년 은퇴를 선언했고, 보이스트의 중재 덕에 기민련과 연정을 꾸리던 녹색당은 연정 정부의 종결을 선포하며 조기 선거를 열었다. 보이스트가 없는 기민련은 2011년에 열린 조기 선거에서 대패했고, [[올라프 숄츠]]를 간판으로 앞세운 사민당이 대승을 거두며 10년만에 시정에 복귀하였다. 한편 숄츠는 이 때부터 2018년까지 시장직을 수행하다 [[앙겔라 메르켈]]에 의해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콜업되며 물러났다.] 반면 정적인 쉴이 다른 시의원과 기민련에서 집단 탈당해 만든 25석의 법과 정의 수호 정당은 호모포비아 정당이란 타이틀을 쓰며 선거에서 0석의 수모를 겪으며 완전히 몰락했다. 2001년 베를린 선거에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가 명문으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고 당당히 시장에 당선된 일과 함께 이 일로 동성애자임에도 표를 의식해 커밍아웃을 꺼리던 정계에 큰 바람을 일으키며 현재 독일 정치계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양성애자/트렌스젠더 정치인들도 당당히 정치 활동을 할 수 있게 앞길을 다져주게 되었다. 자민당 당수로서 당 역대 총선 대승을 이끌고 독일 연방 부총리를 역임했던 [[기도 베스터벨레]]도 한 예. 함부르크는 독일 내에서도 부자 인구가 많은 곳이고, 물가도 매우 높은 곳이어서 한국 사정에 비교되어 좌파 지지율이 낮을 것이라 오해하기 쉬우나,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좌우지지는 소득보다는 소득경로가 더 중요하며 도시에 사느냐, 지방에 사느냐에 따라 더 크게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연방총선에서도 함부르크내 지역구는 사민당이 다수의 지역구에서 승리할 정도로 사민당의 텃밭이다. 그러나 2021년 총선에서는 [[알토나 구]]와 [[아임스뷔텔 구]] 2개의 지역구에서 녹색당이 승리하기도 하여 변화의 바람이 불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