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합동출판사 (문단 편집) === 제1차 반(反) 합동 - '갈매기부대'의 반란 === 합동의 만화계 독주와 전횡적 군림은 만화 작가들은 물론 만화방 영업자들에게도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처음 얼마 동안에는 합동에 반발하는 대항세력이 등장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합동의 조직적이고 집요한 방해로 끝이 났다. '타도 합동'의 첫 포문을 열고자 한 시도로는 1967년 말 ~ 1968년 초에 벌어졌던 '황소문고 사건'이었다. 박봉희를 중심으로 부엉이문고의 작가 박현석과 김기량(김경언 화백과 동서지간)이 서울 약수동에 황소문고를 세운다는 것이 이 계획의 골자였으나, 김경언 화백의 미진한 대응으로 결국은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두 번째 반란은 1968년 '대지문화사(대표 김길용)'를 설립, 군소 출판사와 작가 총판장 등을 규합해 합동의 독점에 제동을 걸었던 일이다. 그러나 대지문화사는 1년도 못 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이유인 즉슨, 박봉희 씨의 증언에 의하면 "영화 쪽 일을 해왔던 김길용 씨가 만화쪽 일을 잘 몰랐던 데다가 합동 쪽의 집요한 방해를 도저히 견디다 못해 이영래로부터 2천만 원[* 이 액수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는데, 2천 4백만원 또는 1천 4백만원이라는 얘기도 있다.]을 받고 만화 원고와 경리장부 등을 모두 합동에 넘겨준 뒤 어느 날 갑자기 잠적했다."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소속 작가들은 모두 합동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대지문화사는 1년 뒤인 1969년, 김창용을 대표로 앉힌 '국제문화사'를 세우고 또 다시 '합동 타도'에 나섰다. 국제문화사는 구 대지문화사의 관계자들과 인쇄시설은 물론 사진, 제본까지 만화책을 일괄 생산해낼 수 있는 탄탄한 모양새를 갖추고 출발을 했으나 이 역시 1년 반을 못 넘기고 1970년 하반기에 결국 와해되고 말았다. 또 이재화, 김정파, 박현석, 김기율 등이 합동에 반발하는 '용씨리즈' 만화를 내고 서울 을지로 3가에 사무실을 낸 것도 이맘때였다. 그러나 용씨리즈 역시 합동이 총판을 동원해 은밀한 판매통제를 가하자 얼마 안 가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청춘출판사, 수범사, 국일문화사, 자유문화사 등 '반 합동' 출판사가 속속 생겨났지만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전부 와해되고 말았다. 거기에 1969년, 만화가 임창 화백은 [[이향원(만화가)|이향원]], 박부길 등과 함께 1차로 '땡이문고'를 세워 합동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합동의 집요한 와해공작으로 인해 해체되어 흡수되는 전례를 따르고 말았다. 이때부터 만화 작가들 사이에는 '갈매기부대'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말은 합동에 대항하는 새 출판사가 나타나면 마치 어선을 만난 갈매기처럼 만화 작가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가는 먹이를 먹고 난 뒤 각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는, 작가랑 갈매기와 같은 속성을 빗댄 자조적인 은어였다. 이 와중에 박기당이 주축이 되어 작가들끼리의 과당경쟁을 막고, 작가가 직접 출판에 나서자는 '작가출판'의 움직임이 고개를 든 것도 이 때였다. 박진우가 주도한 '횃불회 사건'이 그것으로, 합동의 방해를 피해 작가 개개인에 은밀히 접촉하면서 이 움직임은 본격화되었다. 이때 박진우는 "2~3개월 간 점조직 형태로 작가들을 포섭했으나 박기정 씨가 '어떤 형태로든 독점방식은 반대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이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횃불회의 작가 80%가 합동으로 넘어갔다. 이 영향으로 국제문화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합동은 자신의 독점체제에 반발하는 대항세력에 대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차근차근 굴복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더욱 힘을 키웠다. 1970년 국제문화사 해체 뒤 합동은 명실상부히 만화방의 천하통일을 이루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