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합반 (문단 편집) === 1970년대 === [[초등학교]] 고학년도 분반을 했다.[* 당시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였다.] 이 당시에는 남녀의 분리가 오늘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칼같이 엄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의 외가친척 어른분들에게 여쭈어보면 국민학교 시절에도 4~5학년 이상은 남녀가 다른 반이었다고 말해주시는걸 들을 수 있다. 이를 경험했던 사람은 [[2022년]] 현재 [[50대]]를 넘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무조건 겪으신 분들이다. 그 흔적으로 현재까지도 남자와 여자의 출석번호를 다르게 지정하는 초등학교들이 있기는 있다. 예를 들면 1번부터 남학생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여학생은 50번대 이후의 번호를 주는 방식이다. 1950년대 후반이 배경인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는 남녀분반으로 나오고,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소설)|소나기]]도 그러하다. 그래도 남녀의 분리가 엄격하디 엄격했을 그 시절에도 [[서울특별시]] 하나는 분반을 안하는 국민학교들이 꽤 있었는지, 서울에서 국민학교를 보낸 어르신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의 국민학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 사스가 서울 --[* 서울이 대한민국에서 남녀합반을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추진했던 지역이다.] 심지어 서울에는 무려 1950년대에 남녀합반인 '''고등학교'''가 [[이대부고|딱 한 곳]] 있었다. 당연히 그 당시의 [[교육청]]들은 합반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 고등학교는 [[사립학교]]로 운영이 되었다. 1950년대에는 국민학교 고학년도 남녀를 못 만나게 했으니, 이 고등학교가 그 시절에 합반을 전체 학년까지 시행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대부고 개교 초기 시절에 재학생이었던 어른분이 지인중에 있다면, 그분의 말을 듣고 그 당시에는 이대부고가 전체 학년이 합반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문서를 편집해서 기재해주길 바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