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군 (문단 편집) === [[근대]]의 해군 === [[파일:attachment/naval_battle.jpg]] [[무적함대]]가 박살난 이후, 함대전은 원거리 포격전이 대세가 되었다고 많이 알고 있지만, 해병대에 의한 백병전은 섬멸전에서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었다. 사실 무적함대가 영국의 포격으로 잃은 배는 크게 잡아도 6척 이하이다. 당시 조선기술에 화포 반동을 감당할 수 있는 설계가 적용된 것도 아니었다. 당시 배들은 과학적인 설계라기 보다는 각국에 전수된 경험으로 건조되었다. 배에 거치된 화포에 육지에서 하듯이 화약을 붓고 일제히 쏘았다가는 배를 통제할 수 없거나 '''뒤집히는''' 위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구경에 맞는 철환형 포탄을 쏘는 경우 지상보다 화약이 적어서 사거리도 짧았다. 그렇기에 교전하던 전투함들은 서로 접근하면서 석궁 또는 활 그리고 화승총을 쏘다가 사거리가 되었다 싶으면 거치된 화포를 갈기는 것이 해전의 방식이었다. 또한 당대에는 범선에 의한 포격보다 갤리선에 의한 포격이 더 위협적이었는데 선고가 낮은 갤리선이 범선의 [[흘수선]] 근처에 포격을 실시하여 적중하는 경우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는 전술로 갤리선 자체가 아닌 갑판위의 승조원에 대한 살상을 목표로 하는 전술도 생겨났다. 전반적으로 유럽 해군이 원양해군화되면서 갤리선은 도태된다. 어차피 잘 안맞는 함포[* 배 위이므로 흔들린다. 조준이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대충 '이때다'하고 쏘는 식.]이다 보니 최대한 근접거리까지 들러붙어 서로의 배 옆구리에 함포를 쏴붙이다가 어느 시점에 [[해병대]]가 상대방 배로 올라타는 식으로 싸우게 되었다. 이런 전술은 [[트라팔가르 해전]]까지도 유효한 전술이었다. 배가 점점 커져가면서 화력이 증가해도 고폭탄이 없었던 당시에는 단순히 포탄이 목재 선박을 관통할 뿐이었다. [[흘수선]]에 직격된 것이 아니라면 숙련된 선원의 경우 직격된 부분도 금세 수리가 가능했다고 한다. 따라서 근대의 [[전열함]]들의 경우는 오히려 피격 부분을 강도는 높지만 질기지는 않은 목재를 사용하여 피격시에는 적의 포탄이 함을 관통해 반대편까지 뚫고 나아가는 경우가 흔했다. 게다가 배는 나무를 많이 쓰기 때문에 건조 비용이 비싸고[* 영국의 경우 함선 건조로 인해 배에 쓸만한 나무는 씨가 말라서 아메리카 대륙의 풍부한 임산 자원에 의존했다. 비록 [[미국]]이 독립했지만 배에 쓸 침엽수가 풍부한 [[캐나다]]는 영연방으로 남았기 때문에 목재를 조달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포]]하면 선원들이 포상금을 받을 수 있어서 때려부수는 것보다 나포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였다. 당시의 전함들은 동판을 하부에 둘러서 배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해양생물이 점착하는 것을 막기도 하였으나 기술적으로 철선을 건조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철선에 따개비를 막기 위한 구리판을 덧대면 오히려 부식을 가속시켰고 전통적인 목제 범선 제조법은 철선 제작에 어울리지 않았다. 수많은 기술적인 혁신 끝에 구리판은 선체의 철과 단절된 에폭시 도료 위에 적갈색 구리산화물 페인트를 덧칠하도록 바뀌었으며, 19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토목전문가 브루넬이 건축물을 지을 때의 뼈대구조를 배에 그대로 도입하여 현대적인 철선이 나오기 시작한다. 실제 전투에 투입된 최초 철재 함선은 19세기가 저물어가는 시기에야 등장한 [[모니터함]]이다. 이후 강력한 위력을 가진 [[어뢰]]를 소수 탑재하고 빠른 속도를 활용해 가격 면에서 상대가 안 되는 주력함을 위협할 수 있는 [[어뢰정]]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 골치 아픈 어뢰정을 주력함 근처에서 치워버리기 위한 어뢰정 파괴함, 즉 [[구축함]]이 새로운 함종으로 등장하게 된다. 철재 함선 시대에는 대구경의 무거운 함포를 회전 가능한 포탑화하여 소수 탑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원래 이는 의도된 것이 아니었는데 최초에는 증기선과 전함과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증기선은 외륜을 측면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면 측면에 포문을 설치할 수가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갑판 위에 회전식 포탑을 설치하였고 부족한 포문 수을 만회하기 위하여 강력한 위력을 갖춘 주포의 개념이 탄생했다. 영국 해군은 증기선이 범선과 달리 연료보급이 필요하다는 점. 측면에 충분한 포를 설치할 수 없다는 점. 또 그로 인하여 새로운 전술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증기선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프로펠러 추진으로 전환된 뒤에도 회전식 주포 개념은 계승되었다. 전함의 발전단계에 혁명을 일으킨 것이 [[드레드노트급]] 1번함인 [[드레드노트]]였다. 드레드노트를 기점으로 해군은 초거대 함포를 갖춘 [[전함]]의 시대에 들어섰다. 이러한 [[거함거포주의]]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절정에 치달아, 전무후무한 전함간의 대규모 함대결전인 [[유틀란트 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어뢰는 무시무시한 화력 덕분에 지속적으로 이용되면서 어뢰정은 끈덕지게 살아남았고, [[잠수함]]이 실용화되면서 전함과는 또다른 발전이 시작된다. 반면, 동아시아의 해군은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국가간의 경쟁을 억누를 정도로 규모가 큰 [[중국]]이라는 거구가 버티고 있던 동아시아는 특별히 해군이 발달할 여지가 적었기 때문이다. 또한 각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양을 건너가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행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최근 연구에선 오히려 중국과 지속적으로 대치하던 [[베트남]]의 해군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18세기의 [[응우옌반후에]] 왕이 [[태국]]과 전쟁하는데 사용한 대효선은 가장 큰 게 화포가 66문, 탑승정원이 700명인 어마어마한 배였다고. [[목선 선체의 제작방식]] 항목 참조. 이후 개화기가 도래하며 근대화가 되어가던 [[일본]]은 서양에서 기술을 배워 시대를 따라갔다. 초기의 서양식 일본군함들은 거의 영국제 군함이였고 소수의 프랑스제 군함도 보였다. 중국의 [[청나라]] 역시 [[아편전쟁]] 이후 서양 해군의 위험성과 화력을 깨닫게 되면서 서양식 무기들을 도입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해군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였고 [[1890년]]에 이르면 그당시 동아시아 최대의 서양식 함대인 [[북양함대]]를 신설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건조 과정에 [[방산비리]]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게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서양식 함대인 [[연합함대]]에게 격파당하고 이후 일본에서는 국력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자력으로 건조한 건함으로 2차 대전 즈음에는 세계 3위급의 해군을 만들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