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금강 (문단 편집) == [[서복]]이 다녀갔다는 전설 == 해금강 절벽에는 [[진시황]]의 신하 [[서복]](서불)이 명을 받아 동남동녀와 같이 [[불로초]]를 찾으러 동방으로 향했을 때 이곳에 들러 새겼다고 하는, 일종의 인증 문자인 서불과차(徐巿過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글자가 적힌 절벽은 1959년에 역대급으로 강력했던 태풍 [[사라(태풍)|사라]]가 한반도를 덮쳤을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즉 지금은 해금강에 가도 이 글씨를 더이상 읽을 수 없고 아주 미미한 흔적만이 남아있으며, 옛날에는 인지도도 낮고 찾아가기도 힘든 위치였기 때문에 이 글씨를 남긴 사진도 없다. 다만 글씨가 있었음을 전하는 기록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경상우병사였던 조익찬(曺益贊)이 1870년대에 지은 시와 1881년에 영의정 [[이유원]]이 전하는 기록이 있다. 특히 이유원의 기록은 내용이 매우 구체적인데 거제에 유배되었을 당시 해금강을 찾아 탁본을 떴고 이 글자가 옛 서법(書法)의 일종인 도해법(倒薤法)과 만세고등(萬歲枯藤)[* [[서예]] 용어로 만년이 된 마른 등나무와 같이 붓질을 할 때에는(특히 세로획) 힘차고 굳세게 해야 한다는 뜻.] 방식으로 쓰여졌으며 '사람들이 서불 2자는 맞고 과차 2자는 아니라는데, 나는 과차 2자를 보았다'라는 기록과 후에 이 탁본을 들고와서 지은 "갈도석각가(葛島石刻歌, 1881년)"를 남겼다. 서불은 당시 거제의 와현 마을에 머물다 일본으로 건너갔다고도 한다. 서복이 중국에서 동쪽으로 향하며 여기저기에 들렀다는 전설은 다른 곳에도 있으며 남해안 다른 지역과 제주도, 일본에도 전해져 내려온다.[[http://www.newsngeoje.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17|#]][[http://www.geoj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458|#]] [[남해군]] [[금산]]에도 서불과차로 추정되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다만 "글자"인지, "그림"인지가 불분명하고 글자라고 해도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해 연구 대상이다. 그럼에도 남해군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계곡 입구에 서복상을 세워놨다. 또 [[서귀포시]] [[정방폭포]] 절벽에도 서복이 다녀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서귀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추사 [[김정희]]가 이를 발견하여 탁본을 떴다고 한다. 서귀포시도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정방폭포 근처에 서복 전시관을 지었다. [[분류:거제시]][[분류:경상남도의 섬]][[분류:대한민국의 명승]]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