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동검도 (문단 편집) == 현황 == 90년대 이후 해동검도는 여러 분파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으로 나한일 계열과 김정호 계열로 나뉜다. [[2023년]] 기준, 김정호 계열은 세계해동검도연맹(대한해동검도협회)[[http://hdgd.org/index.php|(홈페이지)]], 나한일 계열은 대한민국해동검도협회[[http://www.haidongkumdo.org/|(홈페이지)]]라고 불린다. 규모나 체계성은 대한해동검도협회 쪽이 앞서고 수련도 조용하게 하는 편이다. 부조리 관련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협회명을 계속 바꾸어서 혼선을 일으키는 쪽은 주로 대한민국해동검도협회라고 보면 된다. 1989년 대한해동검도협회가 조직되자 탤런트 [[나한일]]의 이름값 덕분에 전국의 여러 도장이 해동검도도장으로 간판을 갈고 대한해동검도협회에 가입하였다. 유사검도 도장들과 협회들은 원래는 '[[대한검도회]]' 간판을 달고 싶어했으나, 유서 깊고 그만큼 도장 인가도 쉽게 내주지 않는 깐깐한 대한검도회 밑에서는 몇 년을 해도 장사판(도장)을 벌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자기네 유사검도도장과 유사검도협회를 차렸는데, 해동검도가 [[무풍지대(드라마)|드라마 무풍지대]] 덕분에 인기가 올라갔으니 그쪽으로 상호를 교체함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대한검도회]]가 쉽게 수를 늘리지 않아서 유사단체를 난립하게 만들었다면, 해동검도는 반대로 너무 쉽게 수를 늘려서 문제가 되었다. 협회에 수많은 도장들이 가입하자 가입비용과 협회운영을 놓고 대한해동검도협회의 수뇌부끼리 분쟁을 벌였다. 결국 1991년 [[나한일]]은 '해동심검도협회'를 만들어 분리해 나갔다가 1992년 다시 대한해동검도협회로 복귀했다. 하지만 또다시 1992년 분열되어 나간 도장끼리 한국해동검도협회를 차리자 [[나한일]]이 한국해동검도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렇게 협회가 갈라지고 밥그릇 다툼을 벌이자 부실운영을 초래, 여러 병폐들이 일어났다. 아래의 사건항목도 이와 연관이 있다. 크게 [[나한일]]의 한국해동검도협회과 김정호의 대한해동검도협회[* 1996년에 이를 모체로 국제단체인 세계해동검도연맹도 출범]로 나뉘어졌다가,[* 두 단체가 가장 큰데, 세계해동검도가 부조리가 일찍 정리된 편이고 운영과 관리가 좀 더 나은 관계로 이후 교통정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분리가 계속되어 국제해동검도연맹, 도법해동검도회, 한국전통해동검도협회, 해동심검도협회 등 수십여 개 단체로 사분오열되었다. 혼란과 밥그릇 싸움(세 확장을 위한 무리한 도장 확장 및 해동검도 단체끼리 알력다툼)이 이어지던 도중 외부적으로 가장 알려져 있던 [[나한일]]이 2009년 4월 20일 경제범으로 구속수감됨에 따라 나한일 쪽 해동검도 판 자체가 흐지부지된 감이 있다. 단체가 존재하고 거기서 감투싸움이라도 하려면 수련회비를 내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야 하는데, 나한일의 구속 이후 해동검도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이다. 거기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최태민]]과 해동검도 사이의 관련성이 부각됨에 따라 기존 유사검도 사범들도 슬슬 해동검도 간판을 내려버리기 시작했다. 결국 [[2019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유의미하게 활동중이던 해동검도 협회는 네 곳으로 세계해동검도연맹(대한해동검도협회) 대한민국해동검도협회와 한국해동검도연합회, 그리고 국제해동검도협회였는데, 이 중 세계해동검도연맹(대한해동검도협회) 제외한 세 곳이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적어도 어느정도는 교통정리가 된 편이다. [[http://www.civilreport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63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