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릉양왕 (문단 편집) === 제위에 오르다 === 그는 첫 출발부터가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해릉양왕이 번왕이었을 당시 금나라 황제 희종(해릉양왕의 사촌 형)은 해릉왕의 착실한 성품을 높게 사서 그를 자주 불러 같이 대화를 나눴으며, [[금태조]]가 나라를 창건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희종(금)|희종]]이 말해주자 해릉왕이 눈물을 흘리면서 듣는 것을 보고 희종은 그를 더욱 신뢰하였다. 희종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국정에 임하면서 꽤 준수한 통치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재위 10년이 넘어가면서 차츰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며 술주정을 부리고, 대신들을 때리거나 욕을 했으며, 무고한 대신을 함부로 죽이는 등 폭정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런 그에게 실망한 신하들은 해릉왕과 함께 [[역모]]를 꾀하기에 이른다. 당시 해릉왕은 좌승상인 당괄변(唐括辯)과 우승상인 병덕(秉德)과 함께 금 희종을 폐위시키기로 공모했는데 "그러면 지금의 폭군을 폐위시킨 후 누가 황제가 될 것인가?"를 놓고 당괄변이 여러 이름을 제시했지만, 해릉왕이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안 된다고 하였다. 나중에는 더 이상 황제로 만들 만한 사람이 없자, 당괄변은 해릉왕의 뜻을 눈치채고 그에게 "혹시 그대가 황제가 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해릉왕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역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모반을 꾸민 자들은 결국 해릉왕을 황제로 옹립하기로 결정하고 [[금희종]]의 호위 군관을 매수한 후, 일부 귀족 대신들과 짜고 황제의 침실에 뛰어들어 희종을 잡아 처형시키고 해릉왕을 제위에 올렸다. 1149년 쿠데타가 일어나자 희종은 황급히 동생을 찾았지만 희종 앞에 나타난 동생은 오히려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 사태의 전말을 깨달은 희종은 온 힘을 다해 그와 결투를 벌였지만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으며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