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상봉쇄 (문단 편집) === 근대 === || [youtube(60APT_8OPzg)] || || 독일 제국에 대한 영국의 해상봉쇄 || 1. [[프랑스 혁명 전쟁]] 초기였던 1793년 2월에 [[프랑스]]가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영국은 대 프랑스동맹의 핵심국이었으나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프랑스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하진 않은 국가였다. 이것은 혁명 전 체결된 프랑스 왕국과의 무역조약을 통해 저관세로 자국 공산품을 프랑스에 반입할 수 있게 되면서 상업적인 이익을 누렸던 실리적인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혁명 속에서 프랑스가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왕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혁명전쟁이 개전될 때와 곧이어 [[루이 16세]]가 폐위되고 반년후 처형될 때도 영국은 중립을 지켰었다.--[[찰스 1세|왕의 처형은 영국도 해본 적이 있는지라]]--] [[영국 해군]]의 막강한 해군력으로 프랑스 연안 도시 곳곳을 해상 봉쇄하면서 1802년 아미앵 조약으로 일시평화가 될때까지 1차 봉쇄전을 펼쳤고 1803년 조약 파기로 다시 개전하여 최종적으로 [[나폴레옹]]이 몰락한 1815년 6월까지 2차 봉쇄전을 펼쳤다. 2.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연방은 [[아메리카 연합국|남부]] 반군에 대한 전쟁 전략으로 아나콘다 전략을 실행했는데 이것은 남부연합의 모든 해안선을 해상봉쇄하고 [[미시시피 강]]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남부연합을 양분하려는 의도였다. 3. 1차 대전 시기 영국 해군성은 스캐퍼 플로를 비롯한 브리튼 섬 동부 해안 곳곳의 해군기지에 당시 세계 최대, 최강의 함대였던 대함대(Grand Fleet)를 배치했고, 독일 제국은 세계 2위의 해군력을 지니고도 전쟁 기간 대부분을 현존함대 전략을 펼치며 지내야 했다. 이로 인해 독일의 해상 무역은 완전히 봉쇄되었고, 독일 내의 식량 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영국 해군의 해상 봉쇄는 ‘[[순무의 겨울]]’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무제한 잠수함 작전.png|width=100%]]}}} || || [[무제한 잠수함 작전]] 당시 [[U보트]]로 인한 선박 격침 지역. || 4.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섬나라]]로서 석탄을 제외한 모든 물자를 수입해야 하는 [[영국]]의 해상통상로를 절단해 항복을 받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육군국인 독일의 해상전력은 [[영국 해군]]을 능가할 수 없었으며, [[제해권]]을 장악하기보다는 [[고속전함]]과 [[순양함]]으로 해상을 휘젓거나 [[U보트]]로 [[수송선]]을 걸리는 족족 파괴하여 통상로를 파괴하고자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