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상자위대 (문단 편집) == 역사 == 자세한 것은 [[자위대/역사]]를 참고할 것.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이후 [[일본군 해군|일본 제국 해군]]은 해체되었다. 1945년 12월 1일엔 [[해군성]](海軍省)이 폐쇄되었는데 아직 해외에서 복귀하지 않은 [[일본군]] 패잔병들의 문제 처리 때문에 제2복원성(第二復員省)으로 개칭하여 일부 기능을 남겼다. 복원(復員)은 [[군인]]을 [[민간인]]으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제2복원성 외에도 해군 내의 소해(掃海) 부대[* 연안 등에서 기뢰를 제거하는 부대]는 남겨놨는데, 일본이 패망 전에 [[일본 열도]] 연안에 하도 기뢰를 많이 설치해놔서 이를 해체할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군사조직이 해체되었고 육상병력은 완전히 분해됐지만, 해상병력 약 10,000명은 이런 이유로 남았고 [[준군사조직]]인 [[해상보안청]]으로 유지됐다. [[미군정]]은 이들을 일본 열도뿐만 아니라 일본이 [[한반도]]에 뿌린 기뢰를 해체하도록 시켰고, [[6.25 전쟁]] 발발 후에도 미군을 도와 한반도 근처에 [[북한군]]과 [[소련군]]이 뿌린 기뢰 소해 임무도 수행한 적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전사자까지 내기도 했다.[[http://kor.theasian.asia/archives/84286|#]] 해상보안청으로 유지되던 해상병력은 [[GHQ]] 찰스 윌로비(Charles Willoughby) 소장의 일본 해상병력 재군비 계획안에 의해 1948년부터 재무장이 본격화되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어 불길을 당긴 건 다름 아닌 [[한국전쟁]]으로 1950년에 해상보안청은 규모를 늘릴 것을 미군정에 요구받았다. 이에 따라 1952년 4월 26일에 [[해양경찰]]을 하는 해상보안청의 기능은 해상보안청에 그대로 남겨두고 [[해군]] 기능을 분리하여 [[해상경비대]]로 개편했는데, 해상경비대의 장교와 부사관은 '''98% 이상이 구제국 해군 출신'''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해상자위대는 오늘날에도 거리낌 없이 [[욱일기]]와 [[군함행진곡]] 등을 그대로 사용하고, 신규함선 함명도 옛 함명에서 그대로 따오기도 하는 등 제국 해군 시절의 전통을 타 자위대보다 더 짙게 이어오고 있다.] 이후 해상경비대는 1952년 8월 1일에 [[경비대(일본)|경비대]]로 바뀌었고 1954년 7월 1일에 해상자위대가 되었다. 따라서 공식 창설일과 몇몇 기념일은 전신인 해상경비대의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