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운대해수욕장 (문단 편집) == 역사 == 예로부터 명승지로 유명했는데, [[해운대]]라는 이름은 [[통일신라]]시대의 문인 [[최치원]]이 [[소나무]]와 백사장이 어우러진 이곳의 경치에 감탄해 자신의 호인 해운(海雲)에서 따서 붙인 것이다. [[조선팔경]](대한팔경) 중 하나로도 꼽히기도 했다.[* 8경 중 나머지 일곱 곳은 [[금강산]], [[한라산]], [[석굴암]], 부전고원, [[평양]], [[백두산]], [[압록강]].] 인근에는 [[온천]]도 나와 [[일제강점기]]에도 휴양지로 인기를 끌었다. 모래사장으로서의 해운대 해변은 수천 년 전부터 동백섬과 중동의 언덕이 파도에 의해 침식되어 생성된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졌다. 해운대해수욕장은 꽤 오래 전부터 모래사장 해변이었던걸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도 근처 주민들이 어획하러 바다에 나가기 위해 배를 내렸던 기록이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10_Haeundae.jpg|width=100%]]}}}|| ||<:>{{{-1 1910년 [[조선시대]] 말기, [[경술국치]] 직전의 해운대 해변.}}} || 해운대가 휴양지로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에 의해 [[부산항]]이 개항하자 일본인들이 이 해변으로 찾아와서 해수욕을 즐겼던 것이 시초다. [[일제강점기]]에는 근처 학교의 교사들이 학생들의 체력 단련과 수영 교육 등을 위한 장소로도 사용하였다. 본격적인 관광지로 인기를 끈 것은 1934년 [[동해남부선]] 철도가 개통된 이후부터이다. 1934년 7월 16일 부산진-해운대 구간이 개설되면서 해운대에 동해남부선이 지나가게 되었고, 같은 해 12월 16일에는 해운대-좌천 구간이 개설되었다.[* 이후 1935년 12월 16일에 좌천과 울산 노선이 개설되어, 이미 경주와 연결되어 있던 울산과 부산이 이어진다.] 동해남부선이 개통되기 전의 해운대는 접근성이 떨어져서 명소긴 했어도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일상적인 휴양지로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30_Haeundae.jpg|width=100%]]}}}|| ||<:>{{{-1 1930년대로 추정되는 해운대해수욕장.[* 진위가 의심되는 사진이다. 위치상 1910년의 사진처럼 뒤로 산이 보여야 하지만 산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출처가 있다면 정확한 출처를 표기 바람.] }}} || 동해남부선이 개통되고 해운대의 입지가 올라간 이후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부산 온천욕의 메카는 동래였는데 해운대는 해수욕과 온천욕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천혜의 휴양지였다. 이런 해운대에 동해남부선이 깔리다보니 그때까지 한적한 어촌이었던 해운대는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유승훈 저, "부산은 넓다", 글항아리.)] 여전히 당시 부산 최고의 휴양지는 시가지에서 가까운 [[송도해수욕장(부산)|송도해수욕장]]이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해운대해수욕장이 꾸준히 개발되고 반대로 송도해수욕장의 수질은 악화되면서 21세기에는 양 해수욕장의 입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한국전쟁 직후 약 10년간, 동백섬 주변은 [[미군]]의 휴양지인 '[[비치클럽]]'으로 지정되어 개발과 접근에 제한이 있었다. 전쟁 도중 [[수륙양용전차]]의 출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근처의 소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상륙지점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이것이 전후 휴양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렇게 군인 시설이 되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해운대의 발전은 늦추어졌다. 다만 일반인들이 출입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는지, 당시 미군을 상대로 [[초콜릿]] [[구걸]]을 하던 아이들이 백사장에 자주 왔었다고 한다. 송림공원과 노보텔 호텔, 엘시티 공사장 인근에는 미군 수송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지금은 사라진 [[집창촌]]도 원래는 이 미군부대를 상대로 생겨난 곳이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66년 부산 해운대 해수욕 사진 01.pn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66년 부산 해운대 해수욕 사진 02.png|width=100%]]}}}|| ||<:><-2> [[1966년]]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피서 중인 여행객들의 모습 (컬러 복원 사진).||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해운대%28야후%291.jpg|width=100%]]}}}|| ||<:>{{{-1 1970년대의 해운대해수욕장.}}} || 이후 미군휴양지가 해제되고 1965년을 기점으로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해운대해수욕장' 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 이에 맞추어 본래 장산 일대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테마파크 등 관광단지 계획을 전면 수정하여 해운대 신시가지로 추진한 결과, 부산 시가지가 [[해운대구]]까지 확장되는 경제효과가 일어났다. 1990년대 이후에는 해수욕장 주변까지 완전히 개발되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과거의 소나무숲이 우거진 전원적인 풍경은 거의 사라지고, 초고층 빌딩과 특급 [[호텔]]에 둘러싸인 현대적인 분위기의 도시 해변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해운대 해수욕장.jpg|width=100%]]}}}|| ||<:>{{{-1 2010년대의 해운대해수욕장.}}} || 2015년에는 개장 50주년을 맞아 모래사장의 폭을 50년 전 개장 당시의 폭으로 복원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