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적판 (문단 편집) === 1980년대 초반까지 - [[한국 만화]]와 같이 태어난 해적판 === 우리 만화 역사를 다루는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최초의 해적판을 규정하는 건 모호한 작업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해방 뒤의 현대 대한민국 만화사에서 주류적인 대 성공을 거둔 최초의 사례로 흔히 꼽히는 것은 바로 '''1951년에 출간된 서봉재의 <밀림의 왕자>이다. ''' 이 작품은 [[일본 소설]] <[[소년 케니야]]>[* 야마카와 소지는 작가로서 이 소년 케니야는 그림소설에 가까운 책이었고 만화로 나온 것은 1961년이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것은 무려 1984년이었다. 극장판으로 만들어졌는데, 카도카와에서 거액을 투자하여 온갖 방식으로 곳곳에 시험 제작하였다. 원작자인 야마카와 소지(1908~1992- 지구비디오에선 원작자 이름이 한자를 잘못 읽은 것으로 보이는 '야마가와 후사찌?'라고 나와있었다.)가 이 애니 초반과 끝에 실사로 나오는데,맨 처음 시작하면 원작만화가 배경인 장면에서 그가 양복차림으로 앉아 원작 만화를 보다가 미소지으며 일어서서 지구본을 돌리면서 시작하고, 끝에 원작자가 당시 첨단 CG로 그려진 도시로 미소지으며 원작만화를 곁에 끼고 걷으면서 끝난다... 1990년 소년 타잔이란 제목으로 더빙되어 한국에 비디오가 발매되었는데 감독과 제작진 이름을 한글로 자막으로 소개하며 일본 애니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시도는 좋았지만 평이나 흥행은 그저 그랬는데, 나치 잘못하면서 은근히 아프리카에서 일본인이 대접받네 뭐네 한국에서 거슬리는 줄거리임에도 비디오가 나온 게 용하다고 할까? 우리말 성우는 [[최수민]], [[이봉준]], [[조동희]] 외.]를 번안한 해적판이었는데, 한국전쟁 직후 8~16쪽 내외의 토종 만화책과 달리[* 이는 미국식 코믹스에서 한 이슈를 다루는 책 한부가 비슷한 숫자의 페이지로 편성되는 제책방식의 영향을 받은것이었다.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역시 아메리칸 히어로 코믹스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100쪽 안팎의 단행본 형식으로 나와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의 주요 해적판 기법은 [[트레이싱]]'''이었는데 이 기법은 이후 오랫동안 해적판의 주요 기법이 되었다. 트레이싱 기법이 널리 사용된 이유로는 1997년 이전까지 원고를 직접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 내서 검열을 받아야만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해적판이건 뭐건 '원고'가 있어야만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만화에 대한 수익을 두고 서봉재는 출판사랑 갈등을 빚어 이 해적판이 짝퉁으로 나와 <밀림의 북소리>라는 다른 해적판이 나오는 일도 있었다.[[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3825|당시를 회상하던 경남매일일보 기사]]. 당시에 해적판은 시장성이 있으며 창작력 없이도 물량공급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각광을 받았다. 더욱이 1960~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에서는 [[데즈카 오사무]]를 위시하여 [[치바 테츠야]], [[요코야마 미츠테루]] 등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그들의 만화는 간결한 그림체와 몰입도 높은 스토리, 완성도 있는 장편 연출 등 국내의 해적판 업자들을 위한 천혜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미국 만화의 영향을 받은 이전의 극화체 원로 만화가들과는 단절된 새로운 만화 제작 시스템을 기반으로 출판업자들이 작가들을 기술자로 기용했다. 모방은 언젠간 창작을 낳기도 하는데, 트레이싱은 필연적으로 그림체와 연출에서 작품 전체에 걸친 약간의 변화를 동반하여 일부 만화들은 한국의 해적판에서 전혀 다른 그림체와 연출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1974년에 [[소년중앙]]에서 연재했던 <도전자 하리케인([[내일의 죠]])>의 경우 둥글둥글하고 땅딸한 캐릭터들로 된 원작이 오히려 거친 선의 캐릭터로 변모했으며, 이런 변화는 그림체뿐만 아니라 스토리에도 영향이 있었는데 당시의 살인적인 검열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원작의 사회고발적인 내용[* 치바 테츠야는 진보적인 성향의 인물이었다.]은 전부 검열주체의 코드에 부합하는 희망찬 내용으로 번안되었다고 한다. 1998년 이전까지 일본 문화 유입이 봉쇄되었던 시절엔 해적판 만화가 필수적이었다. 에스퍼물의 유행을 이끈 <[[바벨 2세]]>, TV에서도 절찬리 방영되어 거대로봇 붐을 일고 온 <[[마징가 Z]]>, 우리나라에 순정만화 붐을 일으킨 <[[캔디캔디]]> 등이 1980년대가 오거나 TV에서 애니가 수입방영 되기 전에도 '베껴 그리는' 형식으로 국내 만화방에 열심히 소개됐다. 이미 만화문화 전반에 해적판에 대한 의존은 스며들어 있었고, 그건 만화방이란 하나의 매체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1972년부터 직접 구매의 활로를 뚫고 서점 구매용 단행본의 길을 개척해낸 그 유명한 '[[클로버 문고]]'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 역시 창작물과 해적판이 혼재해 있었다. '오상환 작'으로 된 <우주 여객선>이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이고, '성영식 작'으로 된 <영광의 9회말>이 [[아다치 미츠루]]의 <나인>임은 숨기려 한다 해도 숨겨질 수 있는 차원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렇듯 한국에서의 해적판은 원래 통념대로 음지에서 형성된 게 아니라 '양지'인 주류 시장에서 대놓고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이는 저작권법, 지적 재산권 등의 작가의 권리, 창작에 대한 자존심과 모방에 대한 수치 등 최소한의 윤리적 요소들을 무시하는 처사일 뿐더러 무엇보다 만화를 하나의 예술로서, 미디어로서 볼 수 있는 정당한 인식의 여지를 오랫동안 가로막음으로써 '''정부의 [[만화 검열제]]와 더불어 한국만화의 체계적 발전에 한계점을 형성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