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성씨) (문단 편집) == [[외자]] 이름 == [[허준]], [[허조]], [[허균]], [[허목]], [[김보성|허석]][* 본명이었지만 허석김보성으로 개명했다.], [[허재]], [[허웅]], [[허훈]], [[허각]]-[[허공(가수)|허공]], [[허수(프로게이머)|허수]], [[저스디스|허]][[허승(고려)|승]], --[[허일]]--[* 김해 허씨다.]등 허씨는 유난히 [[외자]] 이름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허참]]은 예명으로, 본명은 허씨가 아니다.]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은 김수로왕의 30대손으로, 양천[*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 양천현의 중심지는 강서구 [[가양동(서울특별시 강서구)|가양동]] 일대이다. 양천현 관아터와 양천향교 모두 강서구에 있다. [[양천구]]는 구 양천현의 일부이지 양천현의 중심지는 아니다.] 또한 가양동에 허선문이 태어났다고 하는 허가(공암)바위가 있다.[* 강서구에는 양천 허씨인 허준의 이름을 본따 허준로가 있으며, 공암바위는 구암공원(이 역시 허준의 호에서 따왔다.)라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한강 정비사업을 한 지금도 한강 바로 코앞에 위치하고 있을 정도로 서해 접근성이 좋고, 당시에는 아예 이 지역에 나루터가 있었다. 따라서 허선문은 이 위치에서 무역으로 돈을 만지며 호족 세력을 구축했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에게 [[노숙(삼국지)|군량을 바친 공로로]] 양천의 본관을 얻었다. 그 공로로 준왕족의 지위를 보장받아서 당시는 왕족에 한해 사용했던 외자를 '''대를 걸러'''(즉, 내가 쓰면 아들은 불가능, 손자는 가능)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고려 초기는 호족이 강성한 시대였고, 이에 허씨들은 "생각해 보니 우리는 허황옥 때부터 왕족이었는데?"라면서 외자를 그냥 '''대대로''' 쓰게 됐다.[* [[https://news.v.daum.net/v/20170827173614140|[황규인의 잡학사전] 허준, 허재, 허임..허씨는 왜 외자 이름 많을까]]] 김해 허씨는 두 글자로 된 이름을 쓰지만 양천 허씨들은 지금도 외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변 사람 중에 허씨 성의 외자 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양천 허씨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양천 허씨 대종회에서도 선조의 휘(諱)와 겹치는 문제, 다른 파 간에 있는 이름의 혼동(예로 들면, 같은 이름을 가진 후손이 대수(代數) 상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 석자 이름을 쓰는 걸 권장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