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난설헌/생애 (문단 편집) === 허난설헌 자살설 === 허난설헌 사후 허난설헌의 최후에 대해 다른 기록이 전해지는데,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의 무신 구수훈(具樹勳, 1685 - 1757)은 저서 <이순록(二旬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설헌이 일찍이 월황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지으라 하므로 "부용일타 삼구상타홍"이라 하고 꿈에서 깨어난 뒤 그 경치가 낱낱이 상상되므로 <몽유기>를 지었다. 그 뒤에 그녀의 나이 27세에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집안사람들에게 금년이 바로 삼구의 수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를 맞아 붉게 되었다 하고는 유연히 눈을 감았다. 이 시는 문집에 들어있다. > ---- >구수훈, <이순록(二旬錄)> 하, 권9. 18세기[*출처15 장정룡, 허난설헌 평전 117쪽] 노회찬의 1997년 저서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에서 허난설헌의 최후를 이렇게 묘사했다. >허난설헌은 국제적 베스트 셀러 작가, 1563년 신사임당의 고향 강릉에서 태어난 허난설헌은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나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두 오빠, 그리고 동생들이 모두 당대의 유명한 문장가였던 것처럼, 허난설헌도 어려서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 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신동이란 소리를 듣고 자랐다. 15살 때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결혼한 허난설헌은 27살이던 1589년 강물에 몸을 던져 한과 고뇌로 가득한 젊음을 마감했다. > ---- >노회찬,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 일빛, 1997년, 33쪽[*출처16 장정룡, 허난설헌 평전 118쪽] 즉 구수훈과 노회찬의 기록을 참고하면 허난설헌이 병에 걸려서 요절한 것이 아니라 자살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난설헌 평전을 쓴 장정룡이 저자 노회찬과 직접 전화했을 때 노회찬 작가는 허난설헌의 자살에 대한 1차 자료는 발견하지 못했고, 문중 비문 등 2차 자료를 통해 추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허난설헌이 자살했다는 1차 자료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장정룡은 허난설헌이 자살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추정하면서 이에 다른 견해를 제시한 차옥덕 교수의 견해를 저서 허난설헌 평전에 실었다. >난설헌의 죽음과 관련하여서 생각해 볼 때 난설헌은 아무런 병이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고, 물론 신체적인 외부적 면에서만 언급할 수 있었겠지만, 자신의 예언과 직관에 의해 이미 죽음을 감지하고 있었던 점으로 유추해 볼 때 극도의 정신적 긴장과 고통과 갈등에 의해 소위 정신적 스트레스의 양에 의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적중된 것으로 보인다. > ---- >차옥덕, <허난설헌작품에 나타난 페미니스트 의식연구>, 이화여대대학원 여성학과 석사학위 논문, 1986년, 108쪽[*출처16 장정룡, 허난설헌 평전 119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