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승민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광주 동성고등학교 야구부|광주동성고]] 시절 동기 [[김주형]], [[임창민]], 1년 후배 [[이원석(1986)|이원석]]과 함께 팀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청룡기]] 우승으로 이끌었다.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데뷔 초에는 [[박한이]] 대신 붙박이 1번 타자로 기용될 예정이었다. 특히, 입단 1년차임에도 개막전 선발 출장을 하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타격에서 부진했다. 결국 [[선동열]] 감독으로부터 신임을 잃었고 [[우동균]]과 [[이영욱(타자)|이영욱]]이라는 다른 두 신인 때문에 입지가 좁혀졌다. 그래도 빠른 발이 주특기이기에 대주자로 기용되기도 했다. 2009년 시즌 중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2010년 시즌은 별다른 활약을 못 하고[* 2009 시즌 허리 부상 전에는 2군에서 0.336의 타율을 기록했었다. 반면에 2010 시즌에는 0.223에 그쳤다.] 상무에 입대했다. 입대 첫 해에는 플래툰으로 중견수로 출장해 0.254의 저조한 타율을 기록했다. 이듬해 [[이영욱(타자)|이영욱]]이 입대하면서 대수비로 밀려나 이따금 플래툰으로 좌익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타율은 2할 7푼대로 끌어올렸지만, 55안타 중에 장타가 꼴랑 6개. 이래서야 복귀하더라도 2군에서도 대수비나 대주자로 나올 판이다. 2013년에는 2군 주전 중견수였던 [[박찬도]]가 결장할 때 대신 중견수를 봤다. 이후 이따금 플래툰으로 선발 출장 기회를 얻었지만 타율이 2할 4푼대로 상무 시절보다 더 저조했다. 2014년 시즌 초 자신의 등번호 37번을 [[임창용]]에게 넘겼다. 여전히 2군에서 머물렀고, 100타수 미만으로 그리 많이 나온 편은 아니었지만 .355의 타율을 기록했다. 다만 시즌 33개의 안타 중 장타는 4개 뿐이었다. 2015년 시즌 중 [[임의탈퇴]] 공시됐다. 이미 시즌 초반부터 허리 부상이 재발했다는 설이 돌았는데, 사실상 은퇴라 봐도 무방할 듯. 같은 해 8월 2016년 1차 지명자인 [[최충연]]이 [[KBO 리그/2016년/신인드래프트|신인드래프트]] 인터뷰 때 배번 26번의 유니폼을 입으면서, 그의 배번이 넘어가게 된 것이 알려졌다.(시즌이 종료되기 전이라 구단 홈페이지에는 아직 남아 있다.)[* 실제로 최충연은 51번을 달았고, 26번은 장필준에게 넘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