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재 (문단 편집) == 여담 == [[파일:20211009_kbl_legend.jpg|width=100%]] * 2021년 10월, KBL 개막 특집으로 네이버에서 실시했던 <12명의 KBL 레전드, 현역으로 가장 보고 싶은 선수는?> 설문 조사에서 46.9%의 득표율로 1위를 하였다. * 2018년 3월, 체육계 인사 100명을 대상으로 한 <4대 프로 스포츠 종목별 최고의 스타> 설문 조사에서 박찬호(야구), 차범근(축구), 김연경(배구), [[https://sports.donga.com/sports/article/all/20180320/89196337/3|허재(농구)가 뽑혔다.]] * 2013년 10월, <여러분이 생각하는 역대 프로 농구 판타지 스타는 누구인가요?> 설문 조사에서 54%의 득표율로 1위를 하였다. * 2011년 9월, <대표팀에서 다시 보고 싶은 농구 레전드는?> 설문 조사에서 58.9%의 득표율로 [[https://n.news.naver.com/sports/general/article/065/0000049027|1위를 차지하였다.]] * 2006년 8월, 남자 농구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전설적인 농구 선수는 누구인가?> 설문 조사에서 75%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였다. * 2004년 5월, 한국 갤럽에서 실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설문 조사에서 6위를 차지하였다.[* 역대 갤럽 조사에서 순위권 안에 든 유일한 농구 선수가 허재다.] * 2002년 12월, 패션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2002 베스트 드레서 백조상 - 스포츠 부문> 설문 조사에서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41|1위를 차지하였다.]] * 1999년 12월, <20세기를 빛낸 스포츠 스타> 설문 조사에서 축구 선수 차범근에 이어 [[https://www.donga.com/news/Sports/article/all/19991213/7492237/1|2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20세기 최고의 한국 농구 선수> 설문 조사에서 1위에 뽑혔다. * 1999년 12월, 한국 프로농구 10개 구단 외국인 선수 2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 프로농구 최고의 선수는? - 공격수 부문> 설문 조사에서 절반인 10표를 획득하여 1위를 차지하였다. * 1999년 9월, 제일기획에서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농구 선수> 설문 조사에서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69004|1위를 차지하였다.]] * 1994년 6월, 서울의 20대 직장 여성 833명을 대상으로 한 <가장 좋아하는 운동 선수> 설문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 1994년 4월, 여론 조사 기관 R&R에서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농구 선수> 설문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 1993년 9월, 연예인 202명을 대상으로 한 <가장 좋아하는 운동 선수> 설문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 1993년 4월, <한국의 100대 스타> 설문 조사에서 김영삼 대통령, 배우 최진실에 이어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1993041800191|3위를 차지하였다.]] * 1987년 10월, 제일기획에서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설문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 선수 시절 각종 인기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였다. 그러한 불세출의 슈퍼스타였던 탓에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인공의 우상으로 나오기도 했다. *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에서도 인기가 굉장히 많았고, 대만 현지 농구팬들은 제발 허재가 자국 프로 리그에서 뛰기를 바랐을 정도.[* 1995년 대만 프로 구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었으나 소속팀인 기아자동차에서 필사적으로 막은 탓에 무산되었다.] 일본에서 실시한 인기 투표에서도 순위권 안에 들었던 유일한 한국 선수였다. [[파일:88olympic hur jae.jpg|width=100%]] * [[1988 서울 올림픽]] 때 남자 선수 대표로 페어플레이 선서를 했던 사람이 바로 사진 오른쪽에 있는 허재이고 왼쪽은 여자 핸드볼 선수 손미나이다. 허재의 경우 당시 훤칠한 외모에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스타였기 때문에 선수단 대표로 선정되었다. 원래는 허재 혼자 선정되었으나 남녀평등을 위해 손미나 선수도 함께 하게 되었다. *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시절 당시에 올린 기록은 상당했으며, 특히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가 인상적이었다. [[블라디 디박]], 디노 라자, [[토니 쿠코치]], [[드라젠 페트로비치]] 같은 불세출의 NBA 리거들을 앞에 두고 1, 2번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쳤다. 한국 농구에서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재능이었고, 당시에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신동파와 이충희 계보를 잇는 한 마디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당시 훗날 시카고 불스 왕조의 키식스맨이 되는 토니 쿠코치가 유고의 벤치 멤버였으니 말 다했다. 당시 경기는 유튜브에 존재하며 중계가 없는 방송으로 선수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린다. 허재의 "기범이형~!" "유택이형~!", "아오 씨X~!" 등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경기. 당시 유럽산 외국인 선수로 막 NBA를 평정하다시피 하던 드라젠 페트로비치는 의외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경기다. 현재 유고슬라비아는 여러 나라로 쪼개져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으로 나누어져있지만 이때는 한 팀으로 출전해서 경기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예나 지금이나 농구 강호인 지역이며, 현재도 세르비아 국적의 [[니콜라 요키치]], [[보그단 보그다노비치]], [[보반 마르야노비치]]나 슬로베니아 국적의 [[루카 돈치치]], [[고란 드라기치]], 몬테네그로 국적의 [[니콜라 부세비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적의 [[유서프 너키치]]까지 쟁쟁한 NBA 리거들이 가득하다. * 실력 뿐만 아니라 술에 있어서도 농구계의 전설인데, 야구계에도 실력과 술의 전설인 [[선동열]]과 친분이 있었다. 당연히 둘이 대작을 했는데, 허재의 패배. 그 술이라면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았던 허재가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도망친 것이다.[* [[광주광역시]] 바닥에서 선동열이 술로 제대로 한가닥 했는지라, 어느 정도냐면 허재랑 술을 4차째 마시고 문을 연 술집이 없자, 한 술집 셔터를 두들기며 "나 선동열이오."하니 주인이 환영을 하며 셔터를 다시 올렸다고 한다.] 허재는 이 때 일을 회상하며 난생 처음 '술 먹고 죽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두 사람이 술을 진탕 마시고 선동열 집에서 잠들었는데 숙취 때문에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서 TV를 켰더니 선동열이 마운드에서 던지고 있었다고... 또 [[박한]] 전 고려대 감독과도 일본에서 술내기를 했다가 진짜로 죽을 뻔했다고. 주신은 따로 있었다나. 오랫동안 허재와 선동열이 광주에 허재가 오면 둘이 밤새도록 술을 퍼마신 후 다음 날 허재가 30득점을 해서 스스로 흡족하게 여기는데 선동열이 완봉을 하자 허재가 혀를 내둘렀다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돌았는데 허재 본인이 직접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당연히 거짓말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농구대잔치는 겨울에 한다(...) 프로농구 출범 이후엔 야구 시즌과 농구 시즌이 겹칠 수도 있지만 선동열은 KBL 출범 이전인 1996년에 일본으로 진출했다. 선동열과 선동열의 [[고려대학교]] 동기인 [[정삼흠]]이 선발 맞대결 전날 술을 퍼마시다가 정삼흠은 7이닝 5실점했는데 선동열은 완봉승을 거둔 일화가 와전되어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배우 [[박중훈]]과는 동갑내기에 용산고 - 중앙대 동문인지라[* 단, 박중훈은 재수하여 입학하였으므로 대학교 기준으로는 허재가 박중훈의 1년 선배이다.] 주당으로 유명한 두 사람과의 일화도 있다. 그리고 그 허재조차도 주량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북한의 농구선수 [[리명훈]]이다. 아시아 대회 후에 허재와 대작을 펼친 일이 있었는데, 다음 날 출국 전에 남북한 선수들이 가볍게 인사하고 떠나려 하는 상황에서 허재는 숙취에 제대로 인사도 못한데 반해 리명훈은 취기 전혀 없는 모습으로 "안녕히 가시라요"라며 한국 선수들을 배웅해줬다고 한다. 뭉쳐야쏜다에 출연한 후배 [[문경은]]에 의하면, 태릉선수촌에 국가대표 훈련을 위해 입촌하면 '''"갔다 와."'''라고 사인을 주면, 그 즉시 후배들은 바로 옆의 [[석계역]]의 포장마차로 향해 오돌뼈와 각종 안주를 사들고 왔다고,[* 허재는 손꼽히는 나이트 광이었기 때문에, [[강호동]]의 언급으로도 '''"우지원보다 더 자주 보이는 사람이 허재다!"'''라고 말할 정도라고..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착착 정리를 해서 먹는 [[김유택]]과 다르게 대충 먹고 나이트로 간다고. 참고로, 김유택, 한기범, 허재가 말단일 때 [[이충희]]가 국대 고참이라 종종 방쫄을 했다고.] * 고등학교 동창이자 평생 절친인 영화배우 [[박중훈]]과 40년의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허재가 뭉쳐야 쏜다의 감독이 되자 박중훈이 사비로 그에게 음료차를 보냈다. 고교 시절에 허재는 이미 고교 최고의 농구 선수였지만, 박중훈은 노는 게 심해서 약간 문제아였다고 한다. 대신 허재를 유흥의 길로 가게 해준게 절친인 박중훈이라고. * 소위 '허동택 트리오'를 이루었던 [[강동희]], [[김유택]]과는 은퇴 후로도 자주 교류하였다. 특히 강동희와는 많이 교류했었는데 10-11 시즌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서로 의가 상하지 않게 판정에 대한 항의를 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을 정도. [[2013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그러나 강동희가 승부조작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허재는 큰 충격으로 하루에 담배 4갑을 피웠고 눈물을 흘리며 폭주를 했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10&aid=0000062191|제정신을 못 찾은 듯.]] * 아내 이미수는 ''' "슛 타이밍 때, 못 올라가고 하면 화가 많이 난다. 남편은 워낙 잘했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었지만 애들 경기를 보면 화가 날 때가 많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basketball/news/read.nhn?oid=003&aid=0006962406|#]] ~~차범근 차두리 평행이론~~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허재, 허웅, 허훈.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허재 부자.jpg|width=100%]]}}}|| * 부전자전으로 두 아들 역시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그의 뒤를 이어 둘 다 프로농구팀에 입단하여 KBL 선수가 되었다. [[축구]]계에 [[차범근]], [[차두리]]가 있고 [[야구]]계에는 [[이종범]], [[이정후]]가 있다면 [[농구]]계엔 이들이 있다. 왼쪽이 장남 [[허웅(농구선수)|허웅]], 오른쪽이 차남 [[허훈(농구)|허훈]]. 허웅은 슈팅가드로 아버지가 나온 용산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진학했고, 두 살 아래인 허훈 또한 형과 똑같이 용산고를 거쳐서 연세대에 진학하게 됐다. 둘 다 가드인데 아마 시절 커리어는 형인 허웅보다 동생인 허훈이 더 커리어가 뛰어나며, 객관적인 평가에서 허훈이 앞선다는 평을 받았었다.[* 허훈은 허재의 DNA를 많이 물려받아 타고난 재능이 크고, 허웅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파다.] 한국 농구 역사상 명선수 출신에 감독을 하고, 두 자식들이 모두 아버지를 따라 프로 선수가 된 몇 안 되는 케이스다. ~~ 잘 하는 아들이 내 아들이다 ~~ 여담으로 이 바로 위에 있는 왼쪽 사진은 훗날 [[허섬세월]]의 포스터로 리마스터됐다. [[파일:허재 김승기 신기성 정경호 김상준 자연스럽게.jpg]] * 2019년 12월 30일에 방송된 MBN [[자연스럽게]]에서 [[김승기(농구)|김승기]], [[신기성]], [[정경호(농구)|정경호]], [[김상준(농구)|김상준]]을 초대해 식사를 같이 한 뒤 고사를 같이 했다. [[파일:호구와 울봉이 허재.png]] * 2006년에 방영된 [[개그콘서트]]의 코너 [[호구와 울봉이]]에서 코미디언 [[박성호(1973)|박성호]]가 [[캔디캔디|들장미 소녀 캔디]]의 노래 가사에 관한 문제를 냈는데, 연관성과 전혀 없는데도 [[김준호(코미디언)|김준호]]가 답한 인물이 허재였다. 원래 정답은 [[캔디스 화이트 아드레이|캔디]]. * 아버지가 [[http://v.media.daum.net/v/20190825212508930|군인 출신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관련해서 이야기는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00610/28992242/1|#]] 여기 참조.[* 임종도 못 지켰다고 한다. 자식이 부모 임종을 못 지키는 건 최악의 불효 중 하나라 죄스러운 마음까지 섞여 미친 듯이 울었다고.] * 야구선수 [[이종범]]과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두 아들이 훌륭한 선수로 자랐다는 점과 더불어 친구 같은 아버지라는 점이다. 보통 허재의 다혈질적인 모습과 이종범의 카리스마를 생각하면 엄한 아버지였을 것 같지만 실제로 허재는 매는 커녕 따끔한 훈육도 못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실제로 무서운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이는 이종범 역시 마찬가지로 큰맘 먹고 매를 들려고 했을 때, [[이정후|아들]] 曰 "아버지한테는 도저히 못 맞겠다."는 배짱을 시전, 결국엔 때리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종범, 허재 둘 다 [[왼손잡이]]이고, 필기만 오른손으로 한다. 젓가락을 왼손으로 집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 농구계 은퇴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 간간이 출연했는데, 농구 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낚시라고 한다. [[도시어부]] 게스트로 출연해 볼락을 잡으며 '이게 볼락이야!' 개그를 한다. 이후에 무서운 집중력으로 낚시에 대한 승부욕이 대단하다. [[이경규]]가 예능식으로 고기 안 잡힌다고 분노하는 것과 달리 이 쪽은 정말 안 잡혀서 분노를 퍼붓는 스타일. 이전부터 허재가 낚시를 즐긴다는 뉴스는 많이 나왔는데, 1999년 신문 기사를 보면 허재 본인을 포함해 [[유재학]], [[신선우]], [[이훈재]] 등이 낚시터를 자주 찾는 농구인들로 유명하다고 한다. [[파일:허재 아르바이트.jpg|width=430]] * 방송 촬영 때문에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한 적이 있다. * 가수가 될 뻔한 사연도 있었는데 대학교 4학년 때 11월 말에 개최된 방콕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 대회가 끝난 직후 곡 작업에 들어가 늦어도 연말까지는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아쉽게도 입단이 확정된 기아자동차 구단의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 * 차남 허훈하고 예능 방송에 동반 출연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예능 프로그램에는 현역 KBL 출신 선수들 게스트 출연이 거의 없다 보니 KBL 휴식기 동안 일부러라도 아버지 찬스로 홍보 차 같이 출연하는 듯하다. 허웅 역시 아버지랑 간간히 동반 출연하긴 한다. 다행히도 허훈이 워낙 19-20 정규 시즌 최우수 선수로 뽑히는 등 개인 성적이 좋다 보니 동반 출연에 대해서는 민감한 여론은 없지만, 부자가 같이 출연하다 보니 아무래도 허재나 허훈이 단독으로 출연을 했을 때보다 텐션이 서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허재가 정장을 입을때 자주 매는 주황색 넥타이가 있는데[* 일명 불낙 정장의 상징인 주황 넥타이 그거 맞다.] 이 넥타이는 다름아닌 허재가 처음 감독이 되었을때 아들 형제가 처음으로 허재에게 선물한 넥타이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어지간한 정장을 입는 자리에서는 해당 넥타이를 매려고 한다. * 아들 둘 모두 굉장히 아끼는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https://youtu.be/exiw2Ywmpxw|자기 팀 반칙을 얻어낸 허웅을 보고 웃는 모습]]. 예능 프로그램에 삼부자가 출연하면 항상 아들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보인다. 집에 놀러온 허훈이 자신 침대에서 잘 수 있게 자신은 바닥에서 자거나 밤새 두 아들에게 줄 낙지탕을 홀로 끓이거나 장어를 아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맨밥에 김치 위주로만 먹는 등 굉장한 아들 바보이다. 과거 선수 시절에도 경기를 지고 우울해도 아들과 전화를 할 때는 미소를 보이고, 걷기 힘들 정도로 타박상이 생겨도 두 아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갈 정도로 부성애가 넘쳤다. 하지만 선수 생활에 이어서 감독 생활까지 하다 보니 두 아들의 유년 시절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 후회를 많이 토로하는 편이다. 사실 허재 특유의 이미지나 농구 경기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굉장히 다혈질이라 가족 내에서도 위계질서를 따지거나 엄한 아버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말 예민해보이던 선수 시절에도 가족들에게 다정하고 친근하게 대했다. 어린 시절 아들이 자신에게 발을 올려도 장난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공을 던져도 좋아하면서 웃고 넘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능에 진출한 뒤 장성한 두 아들과 방송에 출연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주변 방송인들도 부자 관계보다는 친구같은 아버지라고 칭찬하거나 놀라는 모습을 많이 보이곤 한다. [[파일:219cb5c63b95458ea81bcc605d7a3b66.jpg]] * 허재 농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유소년 선수 육성에 힘쓰고 있다. [[파일:2019 sbs 연예대상 챌린저상.jpg|width=360]] * 2019년 12월 28일에 개최된 SBS 연예대상에서 챌린저상을 수상했다. * 2020년 4월 28일, 한국소비자포럼이 주최한 2020 브랜드 고객충성도 대상에서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548003|스포테이너 부문을 수상했다.]] [[파일:2021-22 시즌 프로농구 개막전 허재 KBL 명예부총재의 시투.jpg]] * 2021년 10월 9일, 안양 KGC 인삼공사와 전주 KCC 이지스의 경기가 진행된 [[안양실내체육관]]에서 개막전을 축하하는 기념으로 3점슛 시투자로 참가했지만 3개 모두 들어가지 못했다. [[파일:사랑의열매 홍보대사에 위촉된 허재.jpg]] * 2021년 11월 26일,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 위촉과 동시에 허웅, 허훈과 함께 가족 단위 정기 기부 프로그램인 4000번째 착한가정 회원이 되었다. [[파일:2021 KBS 연예대상 리얼리티 부문 최우수상 허재.jpg]] * 2021년 12월 25일에 개최된 KBS 연예대상에서 리얼리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파일:20220116 허재 특별심판.jpg|width=360]] * 2022년 1월 16일에 개최된 [[KBL 올스타전/2021-22 시즌|2021-22 KBL 올스타전]]에서 특별심판을 맡았다. 1쿼터의 점프볼을 올리며 경기를 시작하고 주심도 보긴 했는데 나이가 나이였는지 체력이 딸려서 1쿼터 도중에 진짜 심판으로 교체되었다. 그러고는 허훈 팀 선수들이 있는 잎에서 차남 허훈에게 '''야, 야! 슛 종 쏴.'''라고 말한 뒤 욱하는 모습이 화면에 집혔고, 이내 장남 허웅의 곤에 이끌려 퇴장했다.[* 이때 허웅이 '''아빠가 있으면 진다.'''고 말했고, 허재는 그런 허웅에게 '''알았으니 가라.'''고 답했다.] [[파일:희망 2022 나눔 캠페인 폐막식 허재.jpg|width=360]] * 2022년 2월 3일, 희망 2022 나눔 캠페인 폐막식 행사에 참석했다. * 현역 시절 등번호는 9번이었는데 방송인으로서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에서 등번호가 있는 유니폼을 입을때는 9번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시로 [[뭉쳐야 찬다]]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90번을 달았는데[* 당장 [[양준혁]]도 자신의 영구 결번 등번호인 10번을 달았으며 입찰 경쟁을 이겨내며 지켰다.] 9번을 달고 농구선수로 승승장구한 만큼 다른 번호를 달고 뛰기를 희망했다고 하며, [[뭉쳐야 쏜다]]에서는 감독이라 유니폼을 입을일은 많지 않았지만 허가네팀이나 불낙스 비공식전에서 출전할때 모두 1번을 달았다.[* 이 프로의 마지막 시리즈인 어게인 농구대잔치에서 기아팀 선수로 출전할때 한정으로 9번을 달았다.] 9번은 [[김동현(1981)|김동현]]이 달았는데 자신의 번호임을 강조하는 모습은 보였다. * 2022 [[KBS 연예대상]]에서 프로듀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 농구화에 대해선 전혀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7/12/17/1997121770352.html) 아마추어 시절에는 르까프 터보Z, 프로 초창기 기아 시절에는 팀조던1을 자주 신었다. 특히 팀조던 1은 기아에서 부상투혼으로 챔피언 결정전 MVP를 받았던 신발이라 허재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농구화. 말년 TG삼보 엑서스 시절에는 팀 스폰서가 아디다스라서 티맥2와 티맥3를 신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