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저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신장이 8척(약 190cm)이고, 허리 크기가 10위(약 115cm)이고, 용모는 위엄있고 강인하며, 용맹함과 힘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허리 둘레와 신장이 이 정도이니 체중은 적어도 120kg 이상으로 추정된다. 신체 시뮬레이터로 측정해보면 133kg으로 추정된다. 쉽게 말하자면 ''''[[근육돼지]]''''. 이 정도로 큰 덩치를 가진 사람은 현대 기준으로도 상당한 거구인 만큼, 만약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현대보다 평균 신장이 더 작았던 당대에는 거의 거인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특이점은 사서 기록으로도 제갈량이나 조운(조운 별전) 등 8척 장신으로 표현된 사람들은 여럿 있어도 구체적인 허리둘레를 언급한 이는 거의 없다. 심지어 죽을 당시 비대하다는 묘사가 나오는 동탁도 허리둘레 얘기는 없다. 그만큼 허저가 눈에 띌 정도의 엄청난 거구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비만의 의미가 아니라 덩치가 크고 힘이 매우 센 장수였다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후한]] 말, 청년과 종족 수천 명을 모아 함께 단단한 벽을 쌓아 도적들을 막았다. 당시 여남군 갈피(葛陂)의 적 1만여 명이 허저의 성벽을 공격했는데 허저의 무리가 적어 대적할 수 없었지만 목숨을 다해 싸워 피로가 극도에 달했다. 그들은 화살을 모두 사용했으므로, 성안에 있는 남녀에게 돌을 모아 간두(杆斗)처럼 만들어 성의 사방에 놓도록 명령했다. 허저가 돌을 날려 적을 맞추면, 맞는 것은 모두 부서졌으므로 적은 감히 진격하지 못했다. 성벽 안에 양식이 다 떨어지자 허저는 거짓으로 적과 강화를 맺어, 적에게 소를 주고 식량과 바꾸었다. 적이 와서 소를 가지려 하자, [[소]]는 놀라 도망쳐 돌아왔다. 그래서 허저는 진영 앞으로 나가 한 손으로 소꼬리를 거꾸로 하여 끌어당겨 적군이 있는 쪽으로 백 보 남짓 걷도록 했다.[* 물론 이 역시 엄청난 괴력이지만 [[고대]]의 [[소]]는 품종개량이 되어있지 않아 현재의 소보다 덩치가 작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지금의 [[한우]]는 700kg을 넘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1970년대]]만 해도 18개월 기준 평균 290kg 정도였다.] 적군은 그의 용맹스러움에 매우 놀랐으며, 결국에는 소조차도 감히 달아나지 못했다. 때문에 회(淮), 여(汝), 진(陳), 양(梁) 일대에서는 이 사실을 듣고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 [[조조]]가 회수와 여수를 함락시키자, 허저는 병사를 이끌고 조조에게 귀순했다. 조조는 허저를 보고 용맹함을 느껴 말했다. >이는 나의 [[번쾌]]로다![* [[번쾌]]는 [[전한|한나라]]를 건국한 [[고제(전한)|한고조]]의 개국공신이자 맹장이기도 하다. [[순욱]]을 [[장량(전한)|장자방]]이라 일컬은 것처럼 허저를 번쾌에 비유한 건 조조의 야심을 은연중에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그날로 도위로 임명하여 조조를 호위하도록 하고, 허저를 따르는 협객들을 모두 조조의 호위를 맡은 근위병 '호사(虎士)'로 임명했다. 참고로 호사의 구성원들은 [[전위(삼국지)|전위]]의 부하들이 중심이었다. 즉 조조는 허저에게 전위가 했던 일을 맡긴 것이다. 허저를 보고 죽은 전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렇게 호사는 전위의 부하들과 허저의 부하들로 이루어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