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준이 (문단 편집) === 늦깎이 시절 === 허준이는 부모가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퍼드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태어났고, 2살 때 부모와 한국으로 돌아와서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당시에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방배동)에서 자랐다. 이후 서울방일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수학 영재들은 흔히 어렸을 때 두각을 드러내고 어릴 때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세간에 알려졌지만, 허준이는 어린 시절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버거워했으며 수학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중1 시절, 수학을 업으로 삼는 아버지가 수학 문제집을 풀라고 하자 몰래 답지를 보고 베꼈고 이를 안 아버지가 답지를 없애버리자 허준이는 서점에 가서 답지를 보고 베낀 적이 있었다고 한다.] 허준이의 필즈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 수많은 언론에서 '허준이가 [[수포자]]였다'라는 기사를 냈지만, 허준이 본인이 부정확한 기사를 바로잡겠다며 부인하였다. 대학 입학 전 수학 성적이 우수하지 못했을 뿐 중간은 되었으며[* 수포자라는 말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예체능 특기생 전형처럼 일반 학과 성적을 많이 반영하지 않는 몇몇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에, 그것도 자연과학 전공에 수포자가 합격할 리 없다.], 수학 자체에는 흥미가 있었지만 한국식 입시 위주의 수학 교육 때문에 재미를 지속시키기 어려웠다고 한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293411?rc=N&ntype=RANKING|#]]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수학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경시대회나 과학고에 가볼까 생각했지만 선생이 이미 늦었다고 해서 포기하고 1999년 동네 일반고인 [[상문고등학교]]에[* 물론 진짜로 그냥 동네 일반고는 아니고 여기도 나름 옛 8학군이라 진짜 동네 고등학교는 아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에 꼴통 고등학교로 이름만 바꿔서 나온 적이 있을 정도고 '23년 서울대입학 순위 전체(영재고, 특목고 포함) 23위를 차지 하였으니, 보통 동네 학교는 아니다.] 진학하게 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수학이 재미있어졌고, 중간 이상의 성적을 얻었다고 한다.[* 자신이 [[수포자]] 출신이라는 것은 언론의 곡해라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597596?sid=105|#]]] 이후 건강상의 문제와 야간자율학습으로 얽매인 생활 때문에 힘들어 하던 차에,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1년 만에 자퇴한 후[* 참고로 당시 상문고는 비리로 쫓겨난 前 교장 상춘식이 다시 경영권을 되찾으려 하다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쳐 극심한 학내 분규가 일어난 상태였다.] 2000년부터 1년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런저런 문학책을 읽으며 지냈지만 얼마 안 가 글쓰기 능력의 한계를 느껴 시인의 꿈을 접게 된다. 그러다 과학에 관심을 갖고 과학 기자가 되고자 2001년 재수학원([[강남대성학원]])에 들어가 입시를 준비했다. 거기서 실력이 급상승하였고 결국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서울대학교 물리학부]]에 2002학번으로 입학하였다. 서울대에서 수리과학부, 물리천문학부를 복수전공[* 입학 당시 물리학부였고, 졸업 직전 2006년 물리천문학부로 개편되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705127551017]]]하였는데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63424?sid=102|주변에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고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아 성적표엔 F가 가득했다고 하며]], 4학년 때까지는 순수 수학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위상수학]]이라는 과목을 듣게 되면서 순수 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4학년 때 서울대 초빙석좌교수로 있던 [[히로나카 헤이스케]][* 한국에서는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으로 알려졌으며, 필즈상 수상자이자 교토대학 출신이다. 하버드 박사로 이 사람 역시 늦깎이 수학자로 유명하다.]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수강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히로나카의 수업은 매우 어려웠지만[* 히로나카의 수업이 너무 어려운 탓에 드랍하는 학생들이 95%였다.] 자신의 첫 과학 기사를 히로나카를 대상으로 작성하고자 했기에 열심히 수강하였으며, 그에게 다가가 많은 소통을 하였다. 이때 히로나카로부터 받은 많은 조언들은 허준이가 전공을 수학으로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서울대학교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를 마쳤다. 당시 지도교수는 김영훈이다.[[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20705/114303789/1|#]]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d2r55xnwy6nx47.cloudfront.net/Hironaka-and-Huh_Cropped_LR.jpg|width=150%]]}}} || || 왼쪽부터 [[히로나카 헤이스케|{{{#fff 히로나카 헤이스케}}}]], 허준이, 허준이의 아내 김나영[* 2009년 히로나카의 78세 생일 때] || 허준이는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대학교 12곳에 박사과정 지원을 하였는데 일리노이 대학교 [[일리노이 대학교/어배너-섐페인 캠퍼스|UIUC]]를 제외한 모든 지망 대학에서 거절당했다. 허준이는 UIUC 수학과 박사 과정에서 엄청난 열의로 학업에 임하였다. 박사 과정 1학년 말에 [[리드 추측]](Read's conjecture)을 증명했다. 완전히 풀고나서도 자신이 푼 문제가 정작 유명한 난제였는지 몰랐다고 한다. 리드 추측이 해결되었다는 소문이 미국 수학계에 퍼졌다. 미시간 대학교 수학과의 러브콜을 받고 학교를 옮겨 미시간 앤아버에서 박사 공부를 마쳤다. 미시간 대학교의 박사 학위 청구 논문 주제는 순면체적인 다양성과 대수적 순환의 양수성을 이용해 [[로타 추측]]을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이 논문으로 향후 로타 추측과 같은 조합 분야의 난제에 대수기하학에 적용하는 연구의 초석을 다진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