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황옥 (문단 편집) == 기록 == >건무(建武) 24년 무신 7월 27일에 구간(九干) 등이 조회할 때 아뢰기를 “대왕이 강령하신 이래로 아직 좋은 배필을 얻지 못하셨으니 청컨대 신들의 집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어 항려가 되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짐이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니 짐에게 짝을 지어 왕후(王后)를 삼게 하는 것도 역시 하늘의 명령일 것이니 경들은 염려 말라”라고 하고, 드디어 유천간(留天干)에게 명하여 경주(輕舟)를 이끌고 준마(駿馬)를 가지고 [[망산도]](望山島)[* [[부산광역시]] [[강서구(부산)|강서구]] 송정동에 위치한 섬. 행정구역상 부산이지만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시가지와 붙어있다. 근처에 [[대한제국]] [[순종(대한제국)|순종]]때 허왕후 전설을 전하기 위해 만든 유주비각이 있다. 다만 이 망산도가 기록상 망산도가 맞는지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견해가 분분한 편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과거의 지형과 지금의 지형은 특히 바다와 인접한 섬의 경우 다를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가서 서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神鬼干)에게 명하여 승점(乘岾),,망산도는 서울 남쪽의 섬이고 승점은 연하(輦下)의 국(國)이다.,,으로 가게 하였다. > >갑자기 바다의 서남쪽에서 붉은 색의 돛을 단 배가 붉은 기를 매달고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유천간 등은 먼저 망산도 위에서 횃불을 올리니 곧 사람들이 다투어 육지로 내려 뛰어왔다. 신귀간은 이것을 보고 대궐로 달려와서 그것을 아뢰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여 이내 구간(九干) 등을 찾아 보내어 목련(木蓮)으로 만든 키를 바로잡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이하게 하였다....... >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살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 금년 5월에 부왕과 황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젯밤 꿈에 함께 황천(皇天)을 뵈었는데, 황천은 가락국의 왕 수로(首露)라는 자는 하늘이 내려 보내서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곧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것이 이 사람이다. 또 나라를 새로 다스림에 있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경들은 공주를 보내서 그 배필을 삼게 하라 하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갔다. 꿈을 깬 뒤에도 황천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 부모를 작별하고 그곳을 향해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배를 타고 멀리 증조(蒸棗)를 찾고, 하늘로 가서 반도(蟠桃)를 찾아 이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용안(龍顔)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 >왕이 대답하기를, > >“나는 나면서부터 자못 성스러워서 공주가 멀리에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는 청을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이제 현숙한 공주가 스스로 왔으니 이 사람에게는 매우 다행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그와 혼인해서 함께 이틀 밤을 지내고 또 하루 낮을 지냈다. > >이에 그들이 타고 온 배를 돌려보내는 데 뱃사공이 모두 15명이니 이들에게 각각 쌀 10석과 베 30필씩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 >8월 1일에 왕은 대궐로 돌아오는데 왕후와 한 수레를 타고, 잉신 내외도 역시 재갈을 나란히 수레를 함께 탔으며, 중국의 여러 가지 물건도 모두 수레에 싣고 천천히 대궐로 들어오니 이때 시간은 오정(午正)이 되려 하였다. 왕후는 이에 중궁(中宮)에 거처하고 잉신 내외와 그들의 사속(私屬)들은 비어 있는 두 집을 주어 나누어 들어가게 하였고, 나머지 따라온 자들도 20여 칸 되는 빈관(賓館) 한 채를 주어서 사람 수에 맞추어 구별해서 편안히 있게 하였다. 그리고 날마다 지급하는 것은 풍부하게 하고, 그들이 싣고 온 진귀한 물건들은 내고(內庫)에 두고 왕후의 사시(四時) 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prevPage=0&prevLimit=&itemId=sy&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sy_002r_0010_0230_0030&position=-1|《삼국유사》 제 2권 기이편 가락국기]] >공주가 부모의 명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장차 동쪽으로 가려 하였는데 파도신의 노여움에 막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 부왕(父王)에게 말하였다.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라고 명하니 곧 쉽게 건널 수 있어서 남쪽 해안에 정박하였다........ 탑은 모가 4면으로 5층이고 그 조각이 매우 특이하다. 돌에 미세한 붉은 반점 색이 있고 그 질은 무르니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170600001&code=960100|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일연]] 스님이 직접 현장답사를 가 파사석탑을 관찰하고 쓴 글. 실제 현대 조사에서도 재질이 한반도에서는 나지 않는 엽랍석 성분의 사암으로 밝혀졌다. 다만 인도라고만 확정할 순 없고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에서도 나는 재료라고 한다.] >-----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prevPage=0&prevLimit=&itemId=sy&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sy_003r_0020_0030_0010&position=-1|《삼국유사》 제 3권 탑상편 금관성파사석탑]]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