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황옥 (문단 편집) ==== 아유타국설 ==== 허황옥 관련 현전하는 실질적인 기록은 위에 인용한 [[삼국유사]] [[가락국기]]뿐이다. 다른 기록은 전부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고 쓴 2차적인 것들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허황옥은 아유타국(阿踰陁國) [[공주]] 출신이다. 정확한 위치는 논란이 있으나 허황옥 인도인설을 긍정하는 쪽에서는 인도 북부의 아요디아(Ayodhya)에 있었던 아요디아 왕국이나 후술된 인도 남부의 칸야쿠마리 지역 등을 아유타국이라고 추측하는 편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futurekorea.co.kr/28070_18883_3314.jpg|width=100%]]}}}|| || [[한양대학교]]의 김병모 교수가 2006년도에 추정한 아유타국의 위치[* 참고로 위 지도는 인도 혈통의 [[중국인]] 허황옥이 대륙을 건너 다시 해로를 통해 한반도로 건너온 것이라는 설을 주장한다. 허황옥을 일컫는 보주태후에서 보주가 뭘까 고심하다 이게 중국 사천땅의 옛 지명이고 이곳에서 허씨 성을 가진 인물이 마침 비슷한 시기 반란사건을 일으켰다 진압당한 사실에 착안해 추측성 주장을 한 것. 물론 딱히 명확한 물증은 없다.] || [[태국]] 지역의 왕국이었던 아유타야(Ayutthaya/Ayudhya)를 거론하며 헷갈려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이는 인도의 신화인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아유타(혹은 아요디야)지역명에 영향을 받았기에 이름만 비슷할 뿐[* 인도 신화와 태국의 신화는 상당히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거나 내용이 거의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는 라마야나 서사를 태국식으로 해석한 '라마끼안'이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태국인들의 정체성과 사고에 큰 영향을 주는 신화이기도 하다. 태국인들 절대다수가 불교를 믿으며 사실상 불교국가나 다름없기 때문에 가능한 점.] 시대적으로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난 나라다. [[아유타야 왕국]]은 14세기 중반~18세기 중후반 까지 존속했다. 중세시대 중반기에 [[수코타이 왕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타이족의 국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크메르 등의 타국의 주민으로 활동하였다. 2012년 방영된 [[KBS]] 스페셜 등 허황옥 아유타국설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다룬 대중매체에서는 가야에서 아유타국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인도계 유리[[구슬]]이 나오고 가야의 [[철정]] 기술이 인도 남부와 유사한 점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실제로 삼국유사에 적혀있듯 허황옥이 한국으로 가져와서 쌓은 파사[[석탑]]이 지금도 김해시의 [[수로왕비릉]]에 있는데, 조사 결과 이 [[돌]]은 한반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재질이라고 한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170600001&code=960100|#]] 정확하겐 한반도에서는 나지 않는 엽랍석 성분의 사암으로,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에서 나는 재료라고 한다. 한반도의 철정 기술은 기원전 7-5세기에 무산의 범의구석 제5문화층에서 출토한 도끼, 기원전 4-3세기- 범의구석 제6문화층과 기원전 2세기경의 시중군 노남리, 중강군 토성리, 영변 세죽리 출토 철기들이 선철(銑鐵) 제품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기원전 5-4세기에는 철기를 부분적으로만 사용했고 기원전 3-2세기에 비로고 철기가 광범하게 보급되었다고 주장한다.[* (『조선고고학개요』).] 기원전 3∼2세기 무렵 한반도의 세죽리유적(細竹里遺蹟)은 [[신석기]]·[[청동기]]·[[철기]]의 순서로 된 문화층이며 5기의 주거지와 함께 철제의 호미·괭이·낫·도끼·끌·손칼·살촉·명도전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