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헌리(잠수함) (문단 편집) ==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 == 그 사이 전황은 남부 연방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개전 초기부터 북군은 아나콘다 계획이라는 전면적인 해상봉쇄작전으로 남부의 보급로를 말려놓고 있었으며, 헌리가 모항으로 삼고 있던 찰스턴 역시 북군의 해군에게 봉쇄되어 곤경을 겪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천대받던 헌리 역시 봉쇄를 뚫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었다. 1864년 2월 17일 저녁 헌리는 찰스턴을 출항해 타겟으로 정한 북군의 [[슬루프#s-2|슬루프함]] USS 후사토닉[[https://en.wikipedia.org/wiki/USS_Housatonic_(1861)|#]]을 향해 접근했다. 저녁 8시 45분 후사토닉에 성공적으로 접근한 헌리는 활대기뢰를 앞세워 후사토닉의 우현 앞부분에 돌진했다. 헌리의 돌격을 알아차린 후사토닉은 수병이 총격을 가하고 전속력으로 후진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너무 늦었다. 활대기뢰는 성공적으로 후사토닉의 옆구리를 터뜨렸고, 5분 뒤 배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침몰했다. 이 폭발로 승조원 5명이 사망하고 나머지는 구명정을 통해 퇴함한 뒤 인근의 북군 함선에 의해 구조되었다. 후사토닉은 최초로 잠수함에 의해 격침당한 선박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하술했듯이 정작 인명피해 자체는 헌리보다 더 적었다. 그러나 헌리 역시 딕슨 중위를 포함한 승조원 8명과 함께 실종되었다. 육지에서 공격 성공을 알리는 헌리의 푸른 불빛(해군에서 사용되는 신호등)을 보았다는 기록이 존재하지만 끝내 헌리와 승조원들은 돌아오지 못한채 찰스턴의 앞바다에서 모습을 감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