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헌인릉 (문단 편집) == 헌릉(獻陵) == [include(틀:역대 조선 국왕 관련 문서)]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color: #FFD400" '''조선 태종과 원경왕후의 왕릉 | 헌인릉 내 1기[br]{{{+1 헌릉}}}'''[br]獻陵}}}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img_visual03.jpg|width=100%]]}}} || || '''매장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 36-10 || || '''조성형태''' ||쌍릉(雙陵) || || '''매장자''' ||'''봉분 좌''' [[태종(조선)|태종]] {{{-2 ([[1422년]] [[6월 8일]] 사망)}}}[br]'''봉분 우''' [[원경왕후]] {{{-2 ([[1420년]] [[8월 27일]] 사망)}}} || || '''조성시기''' ||[[1420년]] [[10월 2일]] || || '''홈페이지''' ||[[https://royaltombs.cha.go.kr/tombs/selectTombInfoList.do?tombseq=139&mn=RT_01_09_01|[[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3]]]] || [clearfix] [[파일:헌릉1930.jpg]] 조선 초창기의 왕릉, 특히 쌍릉의 형식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왕릉이다. 위 사진은 192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헌릉의 모습이다. (출처: 조선고적도보) 왼쪽 봉분이 태종, 오른쪽 봉분이 원경왕후의 능이다. [[조선]]의 3대 왕 [[태종(조선)|태종]]과 왕비 [[원경왕후]]를 모신 쌍릉이다. 1420년 태종의 비(妃)이자 4대 왕 [[세종대왕|세종]] 그리고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의 모후였던 [[원경왕후]]가 먼저 승하하게 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왕릉이 지어져서 안장되었고 이후 상왕(上王)이 되어서 3남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난 [[태종(조선)|태종]]도 승하하여 같은 자리에 안장되면서 헌릉이 지어지게 되었다. 태종의 가혹한 외척 숙청으로 인해 말년 심신이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난 원경왕후의 릉에 태종까지 안장한 이유는 세종대왕이 두 부부가 저승에서라도 화해하여 잘 지내기를 바란 의도가 있었다. 원경왕후가 세상을 떠나 원경왕후의 상을 치를 때 태종은 역월단상제([[삼년상]] 항목 참조)를 적용해서 굳이 3년상을 다 치를 필요 없고 12일만 입으라고 했지만 세종은 "3년복을 다 입지는 못해도 어머님 산소에 모실 때까지는 입겠다"고 반대했으며, 세종은 또한 태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경왕후의 무덤 옆에 작은 절을 지으려고 했는데, 태종이 "내가 불교를 싫어하는데 왜 내가 나중에 들어갈 무덤 옆에 절을 짓냐"고 버럭하자 "어머니 계시는 곳이 너무 적적해서 절에서 염불하는 소리라도 들으시면 좋지 않을까 해서 그럽니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절을 짓는 것은 없던 일로 끝났지만, 세종이 태종의 말에 정면으로 반발한 몇 안 되는 사례로 남아 있다.[* 사실 태종과 원경왕후는 정말 사이가 늘 나쁜 것이 아닌 부부 애증관계의 아주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투기도 살벌하게 다퉜지만 자식양육에 있어서는 죽이 잘 맞기도 했으며 자녀도 일찍 잃은 자식을 포함해서 굉장히 많이 낳아왔다. 그리고 무덤 관련 일화에서도 나와있지만 태종 본인이 원경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소망하였다. 이에 대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작가 [[박시백]]은 세종 실록 편에서 "외척 단속과 왕권 강화라는 명분이 있기는 했지만 어머니와 외가에, 나아가 자신의 처가에까지 너무 가혹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