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헌정왕후 (문단 편집) === 현화사비 === 헌정왕후 사후 26년이 지난 1018년, 현종은 황비(皇妣) 황고(皇考)[* 족보상으로 비는 어머니 쪽, 고는 아버지 쪽을 이른다. 즉 황비 황고는 황제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르는 말.]를 위해 [[현화사]](玄化寺)를 짓고 1021년에 [[현화사비]](玄化寺碑) 비석을 세워 부왕과 모후를 추모했다. 그런데 이 [[현화사비]]에 적힌 안종, 헌정왕후에 대한 내용이 [[고려사]]와 조금 다르다. 현화사비엔 헌정왕후가 경종의 왕후였던 부분은 쏙 빠지고 처음부터 안종의 왕후였던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또한 헌정왕후가 993년 3월 19일에 [[만월대 내 별궁|대내 보화궁]]에서 붕어했다고 한다.(以其年三月十九日, 崩于大內之寶華宮.) 즉, 현종을 낳고 8개월 정도 더 살았던 것이다. 성종이 헌정왕후를 위해 후계자 목종을 시켜 제사를 지낸 것이나 능묘 조성을 위해 도감을 설치한 것은 고려사에 등장하지 않는 기록이다. 현화사비는 현종이 직접 세웠으니 현화사비가 맞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 내용의 신빙성에 다소 의문이 가는 부분이 있다. 가령 비석엔 안종이 유배 가서 죽은 부분을 '거란을 피해 남하했는데 급병에 걸려서 죽었다.'라고 써놨고, 당시 [[만월대]]에 있던 현종이 '안종을 부축하며 같이 내려 왔다.'고 써져있는데 문제는 당시 현종의 나이는 유아의 나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현화사비는 현종이 부모를 기리기 위해 세웠으니 왜곡 미화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사족으로 사실 현종 왕순이 아버지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지는 기록이 전무하니 알 수 없지만, 들었다 해도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왕순의 나이가 고작 4~5살 무렵이니 제대로 이해할 순 없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성인이 된 후 주변인들에 의해 알게 되었을 확률이 더 높다. 안종 입장에서도 어린 아들한테 "너는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다." 라고 말하긴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다.[* 더구나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안종은 그 사통 때문에 유배까지 당한 처지였으니 더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종이 잘못 알고 있었든 아니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왜곡했던 간에 부모를 미화한 몇몇 부분들로 인해 고려사의 기록이 진실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다만 고려사는 조선시대에 쓰여졌으며 그 기록 또한 내용이 간략한데다 설화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어, 당시의 기록인 현화사비 내용도 어느 정도 참조해서 볼 필요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