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로도토스 (문단 편집) === 오류 === 정확성이 높다고 기술한 내용들이 다 정확한 것은 아니며 근본이 [[카더라 통신]]인 만큼 당대 널리 퍼져있던 헛소문들로 인한 오류도 많다. 그러나 랑케 이후의 근대 역사학을 고대인 헤로도토스에게 강요할 수도 없거니와 헤로도토스도 100% 과학적이고 올바른 역사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쓴 것은 아니다[* 사실 근대 이전의 역사 기록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한 일을 자랑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남긴 것들이지, 무슨 후세 사람들한테 정확하고 과학적인 기록을 남겨 역사 연구에 도움이 되라는 생각을 가지고 남긴 것들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고대 중국의 철학자인 [[맹자]]도 "'''책에 적인 내용이라고 해서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차라리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낫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적도에 만년설이 있다든가, 한낮의 해가 북쪽으로 뜬다든가 하는 그 당시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있었기도 했고. 시대와 개인의 한계를 보여 준다고 봐야 한다. * [[이집트인]]들이 머리에 햇빛을 자주 받아서 [[두개골]]이 단단하다고 했다. * [[피라미드/이집트|피라미드]](정확히는 [[쿠푸의 대피라미드]])의 건축에 대해 헤로도토스는 [[쿠푸왕]]이 노예 20만 명을 동원해 자신의 무덤을 만들도록 채찍 아래 노예 노동을 강제한 잔학무도한 왕이라고 깠다. 이로 인해 '채찍을 맞으며 피라미드를 짓는 노예들'이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의 뇌리에 제대로 박혀 현재까지도 각종 창작물에서 그렇게 묘사될 정도이고, 이 때문에 오랫동안 쿠푸왕은 허영심 많고 잔학무도한 폭군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각종 유물과 유적의 발굴로[* 특히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근처에서 노동자의 무덤과 마을 유적이 발굴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피라미드 건축은 강제노동이 아니라 당시 종교적,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공공근로사업이었으며, 노동자들에게는 급여, 복지, 휴가가 제공되었고 심지어 파업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 예시로 과음으로 인한 [[숙취]] 때문에 업무를 하루 빠진 노동자의 기록이 남아있다. 노예였다면 술을 입에 대거나, 업무를 마음대로 빠질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헤로도토스의 주장은 현대 학계에서 완벽하게 논파되었다. 당시에도 2000년전 지어진 건축물이라 이집트 현지인들도 정확한 정보가 없는데다가 민주정 체제를 채택하고 전제군주를 본능적으로 경계했던 그리스 출신인 헤로도토스는 거대한 대피라미드를 짓기 위해서는 평민들에 대한 착취가 반드시 필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 서술을 한 것이다. 쿠푸의 대피라미드가 [[이집트 신왕국]] 시기에 지어졌다고 기록했으나, [[쿠푸]]는 [[이집트 고왕국]] 시대 인물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몇천 년 차이가 난다. * [[페르시아 전쟁]] 당시의 [[페르시아]] 군대의 규모를 수백만으로 뻥튀기했다. 사실 이것 외에도 인구수에 관해서는 뻥튀기한 흔적들이 많다. * [[나일 강]]의 범람에 대한 설명들을 소개하면서, 나일 강이 [[눈(날씨)|눈]]이 녹아 생긴 것이란 주장을 가져오며 그 주장을 헛소리라고 비판했다. 적도는 엄청나게 더운데 무슨 눈이냐는 게 이유.[* 사실 이런 생각은 이후에도 계속되어서 [[적도]]는 너무 뜨거워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으로 이어져왔다. [[사하라 사막]]이란 게 있기도 했고. 그러나 사하라 사막은 적도보다 한참 위인 저위도에 있고, 적도는 강수량이 많아서 연평균기온과 최고기온이 오히려 저위도보다 낮다.] 그리고 나일강의 범람에 대한 헤로도토스의 해답은 태양이 "계절풍으로 밀려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태양]]이 불덩어리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자연철학]]자도 꽤 있었고, 물체이긴 한데 그렇게까지 큰 물체는 아니란 식으로 얘기한 자연철학자도 꽤 있었다. 그러나 [[나일 강]]은 실제로 [[만년설]]로 덮인 [[https://ko.wikipedia.org/wiki/%EB%A3%A8%EC%9B%AC%EC%A1%B0%EB%A6%AC%EC%82%B0|루웬조리 산맥]]에서 발원한다고 밝혀졌다.[* 정확히는 루웬조리 산맥과 빅토리아 호, 타나 호, 앨버트 호등 여러 수원지의 물길이 모여 나일 강을 형성한다.] * 고대 [[페니키아|페니키아인]]들이 배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일주한 이야기 등을 전하면서[* 성공담도 있고 실패담도 있는데 성공담의 경우는 아예 종자를 배에 싣고 가면서 가을이 되면 농사지어 먹으면서, 3년에 걸쳐 천천히 이동한다는 방식을 채용했다고 한다. 실패담의 경우는 도저히 배가 나가지 않아서 돌아왔다고 하나 왕은 이를 거짓말로 보고 참수했다는 것이다.], 남쪽에 가면 해가 북쪽에 떠 있다는데, 전하긴 전한다만 말이 되냐고 비판했으나, 오늘날의 상식으로 보면 매우 과학적인 사실이다. 자세한 사항은 [[희망봉]] 항목 참조.[* 참고로 희망봉은 '''[[남반구]]'''에 있다.] * [[인도인|인도 사람]]들의 [[정액(체액)|정액]]은 피부색을 닮아 거멓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 페니키아 출신인 [[카드모스]]가 전파한 [[페니키아 문자]]를 토대로 [[그리스 문자]]가 탄생해서 아주 오랫동안 써왔다고 했다. 이 기록은 오랫동안 정설로 여겨졌지만 1900년에 아서 J. 에반스가 [[크노소스 궁전]]에서 점토판을 발굴하면서 [[고대 그리스]] 이전인 [[미케네]] 문명 시대[* 기원전 17세기 ~ 기원전 12세기]에는 [[선형문자 B]]라는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했음을 알아냈다.[* [[카드모스]]나 카드모스의 모델이 된 인물이 존재한다면,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시기가 기원전 1600년~1500년 사이일 것이라고 알려졌다.] 실제 역사대로라면 그리스 문자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