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헬싱키 (문단 편집) == 역사 == 1550년에 [[스웨덴]]의 독립 시조 [[구스타브 1세 바사|구스타브 1세]]가 [[한자동맹|한자도시]] [[탈린|레발]](Reval)을 견제하려고 세웠으나 입지가 좋지 못한 데다가, 당시 헬싱키의 중심지는 외곽의 반하카우풍키(Vanhakaupunki)였다. 현재의 비론니에미(Vironniemi)로 옮겨간 것은 [[크리스티나 여왕]]대인 1640년. 1561년, 탈린과 [[에스토니아]]가 스웨덴으로 편입되면서 한동안은 발전이 도태되었다.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 영토가 된 이후인 1812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스웨덴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핀란드의 중심지를 스웨덴과 지척인 [[투르쿠|오보]](Åbo)에서 헬싱키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다만 실제로 대부분의 기관이 헬싱키로 옮겨간 것은 1827년 투르쿠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도시 대부분이 불에 탄 이후였다.] 핀란드의 유일한 [[대학교]]였던 [[헬싱키 대학교|오보 왕립 아카데미]](Åbo Kungliga Akadem/Turun akatemia)도 헬싱키로 이전하였고,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에서 독립한 이후에 독립 핀란드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1944년 [[계속전쟁]] 때 소련군의 지속적인 공중 폭격에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았는데, 이는 독일로부터 전수받은 대공 방어 전술을 이용해 방어망을 촘촘하고 세밀하게 설계한 덕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발한 기만 전술도 큰 역할을 했다. 헬싱키는 [[발트해]]에 맞닿아 있고, 헬싱키 앞바다에는 수많은 작은 무인도들이 있다. 핀란드군은 이 섬들에 다양한 조명들을 설치하고 헬싱키에는 [[등화관제]]를 실시했다. 대공 포격을 막기 위해서 소련의 폭격은 늘 야간에 이뤄졌는데, 항법 기술도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당시 도시의 위치를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빛을 보는 것이었기에 소련의 폭격기들은 조명이 잔뜩 켜진 무인도들에 포탄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즉, 헬싱키는 그 앞바다에 야간에만 보이는 가짜 헬싱키를 만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