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혁련발발 (문단 편집) === 멸문지화 === 391년 11월, 대래성에서 철불부의 부족민들을 모아 힘을 키우던 아버지 유위진이 [[북위]]의 태조 도무제 [[탁발규]]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고 5,000여 명의 종실들이 주살당했다. 유위진 또한 북위의 장수 이위(伊謂)가 이끄는 경기병 추격대에게 쫓기다가 부하에게 배신당해 피살되었다. 이때 유위진의 어린 아들 유발발은 가까스로 도망쳐 선비 질간부로 피신하니, 북위의 도무제 탁발규가 사신을 보내 유발발을 요구했다. 이에 질간부의 수장이 북위가 두려워 유발발을 압송하려 하자, 수장의 조카였던 질간아리(叱干阿利)가 급히 나아가 아뢰었다. >"새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사람의 품에 안기면 재난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데, 하물며 패가망신한 어린 아이의 경우에야 다르겠습니까? 설령 그를 품을 수 없더라도 마땅히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지금 유발발을 잡아다가 북위에 보내는 것은 어진 자의 소행이 아닙니다." 하지만 질간부의 수장은 북위에 책망받을까 두려워 이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질간아리는 하는 수 없이 몰래 용맹한 자를 보내 유발발을 압송해가던 일행을 습격하고는 그를 빼돌려서 [[강족]] 요씨의 [[후진(오호십육국시대)|후진]]으로 보냈다. 이후 유발발은 후진의 휘하에서 [[오르도스]] 지역의 고평을 다스리던 선비 다란부(多蘭部)의 수령 [[몰혁간]]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고, 그의 [[딸]]과 결혼했다.[* 참고로 질간부가 유발발을 보내오지 않자 북위의 도무제 탁발규는 그대로 군사를 보내 질간부를 도륙내버렸다. 이로 인해 질간부의 수령은 북쪽으로 도망쳤고, 질간아리는 후진에 있는 유발발에게 갔다.] 유발발이 장성했을 때, 그의 키는 8척 5촌[* 당시 척인 23.7cm로 계산하면 201cm가 나온다.]에 달했고, 허리 둘레는 10위[* 현재 기준으로 계산하면 115cm 정도이다.]였다. 화려한 풍채의 미남인데다가, 총명하고 언변에도 능숙하여 후진의 황제였던 고조 문환제 [[요흥]]의 총애를 받았다. 요흥이 그를 처음 만나보고는 매우 놀라워하며, 그 자리에서 유발발을 효기장군으로 임명하고, 항상 그와 더불어 군국대사를 의논했다. 요흥의 동생 요옹(姚邕)은 형이 개국공신들보다 유발발을 총애하는 모습을 보고 >"유발발은 천성이 어질지 못해 친해질 수 없습니다" 라고 경고했지만, 요흥은 >"유발발은 대재다능하여 그 재능을 이용해 천하통일하려는데 안될 거 뭐 있겠는가!" 라며 맞받아쳤다. 이후로도 요흥은 유발발을 신뢰하여, 406년에 그를 안북장군에 임명하고 오원공에 봉한 뒤, 삼교(三交)의 5부 선비족과 기타 이민족 병사 30,000명을 주어 그의 장인인 몰혁간과 함께 고평과 삭방 지역을 지키도록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