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건설 (문단 편집) == 역사 == [[1947년]] [[5월]]에 이 회사의 전신인 현대토건사가 세워지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주식회사]]가 아니었고, [[1950년]] 현대자동차공업사[* 현재의 현대자동차가 아닌 일제강점기부터 운영하다가 일제의 기업정비령으로 일진공작회에 강제합병된 자동차정비업체 아도 서비스(Art Service)를 해방 후 반환받아 이름을 바꾼것이다. '''현대'''라는 명칭은 여기서 처음 쓰였다.]와 합병해서 [[주식회사]]로 전환, 현재의 현대건설이 되었다. [[6.25 전쟁]] 당시 [[미군]] 숙소 등을 지으며 세를 확장하기 시작하여, [[한강 인도교]], [[경인고속도로]], [[소양강댐]], [[고리 원자력 발전소]] 등을 지으면서 급성장했다. 1955년 현대상운을 합병한 후 1958년 충북 단양 석회석광을 사서 1964년 시멘트공장을 세워 시멘트제조업도 했다. [[1965년]]에는 [[태국]] 파타나~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어서 [[대한민국]] [[건설]]업계 최초로 해외건설공사를 수주한 회사가 되었다. 1967년 단양 시멘트공장을 현대시멘트로 분리했다. 자타공인 이 회사의 역작은 [[1970년]]에 개통한 '''[[경부고속도로]]'''. 태국 고속도로 시공 경험 덕분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시공사들 중에 가장 많은 공구를 따내게 된다. [[197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냈는데, 참고로 사우디 산업항 공사로 벌어들인 돈은 9억 3,000만 [[미국 달러]]로, 당시 '''[[대한민국]] 정부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고 전해진다.[[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09077§ion=sc3|#]] 지금으로 치면 사업 하나 성공해서 250조를 벌어온 격. 그 외에 1971년 현대콘크리트를 합병한 후 1973년 조선사업부를 현대중공업으로, 1974년 기술사업부를 현대종합기술개발, 1976년 관악석산/주택사업부/콘크리트사업부를 한국골재개발/한국도시개발/벽제콘크리트로 각각 분사시켰다. 뒤이어 1977년 가구사업부를 금강목재공업, 1987년 알루미늄 사업부를 현대알루미늄, 1989년 중기사업부를 현대중기산업으로 각각 독립시켰다. 1999년 현대엔지니어링까지 합병하고 주상복합 브랜드 '하이페리온'과 아파트 브랜드 '현대 홈타운'을 각각 런칭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1973년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1975년 [[중동]]에 진출했고, 특히 [[이라크]]에서 많은 공사를 수주했는데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하고 이라크가 경제제재를 당하면서 1조원 이상의 공사대금이 미수금으로 남게 된다.[* 2007년 17대 대선을 2달 앞두고 국회 금감위 감사에서 김영주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당시 현대건설 대표이던 이명박 후보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0197202|#]]] 이는 2005년에야 이지송 사장이 전체의 80%를 탕감하고 나머지 20%(6억 8,130달러)만 받는 걸로 끝맺음했다.[[https://news.bizwatch.co.kr/article/real_estate/2013/11/25/0032|#]] 거기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수주/분양 부진 등 수익성 악화까지 겹쳐 2000년 '''2조 9천 8백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부도를 냈다. 같은 시기 2000년 왕자의 난으로 [[정주영]] 명예회장이 은퇴한 후 2001년에 [[정몽헌]] 회장은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자들의 출자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관리했다. 그 후 워크아웃 절차를 밟으면서 엔지니어링사업부를 [[현대엔지니어링]], 철구사업부를 현대철구(현 현대스틸산업), 영농사업부문을 현대서산농장으로 분리시키는 등 구조조정을 이행하여, 2006년 5년 2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했으며 같은 해 IT기획부를 현건C&I로 분리시켰다. 2007년 현대서산농장 영빈관 옆에 '아산연수원'을 열었고 국내 최초의 기업도시 '태안기업도시'를 착공했다. 2010년 9월, 긴 워크아웃을 졸업한 현대건설 인수전이 열렸는데, 정주영 회장의 적통 계승의 상징성이 있다보니 다시금 대결이 일어났다. [[정몽헌]] 회장 집안의 [[현대그룹]]이 더 높은 인수가격을 불러 우선협상대상자가 되었으나, 자금 조달능력에 의문이 제기되어 철회되었다. 2011년 4월,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둘을 인수하게 되었다. 2014년 4월,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엠코]]를 합병했는데, 이로서 '''[[현대자동차그룹]] 산하에서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사업영역이 다소 겹친 채 공존한다.''' 2023년 기준 대략 현대건설은 토목/건축/주택/플랜트/에너지 쪽, 현대엔지니어링은 플랜트/건축/인프라/자산관리 쪽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