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전자 (문단 편집) === 설립 === [youtube(fg78dY9AVk8)] ▲1988년 현대전자 기업 PR 광고 황금 거북선 편. [[파일:external/img.g2b.go.kr:7070/CD_Vision_2000.jpg]] ▲ 당시 현대전자에서 만들었던 CD비전 전신은 [[1949년]] 국도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건설업체이다. [[1983년]] '''현대전자'''로 사명을 변경하여 가전제품 제조업체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현대에서 새로운 사업 추진하기 위해 다른 회사를 인수해서 간판과 업종을 갈아치운 격이었다. [[우회상장]] 의도도 있었겠지만 국도건설이 [[경기도]] [[이천시|이천군]](현 [[이천시]])에 30만 평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당시 전자제품 시장 상황은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의 3강 체제로 가고 있었기[* 그 외 영상기기는 [[아남전자|아남]], 음향기기는 [[인켈]]-[[태광산업|태광]]-[[롯데그룹|롯데]] 3강이었다.] 때문에 이미 전자제품으로 파고 들어갈 여지가 많지는 않았다.[* 당시 재계 1위의 [[현대그룹]] 포스라면 파고들려면 충분히 들 수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 즉 이미 선발업체가 자리잡고 있는데 후발기업이 [[현대그룹|모그룹]]의 [[돈지랄]]로 진흙탕 경쟁을 만들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 및 선발업체의 반발 때문에 알아서 소비재 전자제품으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산업전자제품으로 포지셔닝을 했다. --[[현대 유니콘스|야구단]]은 [[돈지랄]] 잘만 했으면서--] 때문에 현대전자에서 채택한 길은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현대 멀티캡) 및 반도체 산업이었다. 반도체의 경우 이미 아남산업과 삼성전자가 진출하기는 했지만 아직 신생 산업에 가까웠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자체 기술이 빈약한 현대전자가 대단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일단 그나마 간단한 TV와 모니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1995년에는 [[CRT]]로 HD 수준의 화질을 구현하는 정도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ADSL]] 사업이나 LCD 모니터나 컴퓨터나 휴대폰 등 당시 돈이 될 것 같고 좀 투자가 필요해 보이는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 하면서 진출했다. 1985년부터 메모리 양산 체제에 들어갔고 1986년에는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1989년 미국 알렌 브래들리와 합작해 '[[현대정보기술|현대알렌브래들리]]'를 세웠다. 1993년에는 유명 하드 업체인 맥스터를 인수하는 등 초창기부터 반도체 부분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이 부분이 나중에 이어져 하이닉스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